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과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일본 총리의 상견례를 겸한 정상회담에서는 양국의 역사인식과 관련해 상당히 의미 있는 대화가 오갔다. 미래지향적인 양국 관계를 위해 우선 큰 틀에서 과거사를 매듭짓자는 데 의견이 일치한 것이다.
양 정상은 히토야마 총리가 민주당 대표 자격으로 지난 6월 방한했을 때 청와대에서 회동한 바 있으나 정상간 회담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대통령은 먼저 "양국이 서로 신뢰하고 가장 가까운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데 하토야마 총리가 충분히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운을 뗐다. 이에 하토야마 총리는 "역사를 직시할 용기를 갖고 있다"고 바로 화답했다. 한일관계의 급진전을 기대할 만한 대목이다.
하토야마 총리는 그간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밝혀 왔다. 1995년 당시 사회당 출신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는 담화를 통해 과거사에 대한 공식적인 사죄의 뜻을 표명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22일 중일 정상회담에서도 이런 입장을 재확인했다.
청와대는 다음 정상회담에서 하토야마 총리가 무라야마 담화 수준보다 진전된 입장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경우 양국 정부간 구체적인 과거사 청산 논의가 진행될 것이고, 이 대통령이 이미 공개 요청한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방한 문제는 청산 논의의 중심에 자리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일왕 방한 시기나 형식에 관해서는 조율해야 할 문제가 적지 않아 성사 여부를 섣불리 예단하기 어렵다. 이 대통령은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이 되는 내년 일왕의 방한이 이뤄진다면 과거사에 종지부를 찍는 의미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한 바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일왕이 방한할 경우 적어도 과거사에 매듭을 짓는 차원에서 독립기념관이나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등 상징적인 장소를 찾아 사죄하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토야마 총리가 일왕 방한 요청에 대해 어떤 답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그 답에 따라 양국 관계 증진의 속도와 폭이 결정될 것이다.
뉴욕=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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