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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문화 애국주의

입력
2009.09.24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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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대에도'문화 애국주의'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통해 오히려 더 위력을 발휘한다. 사적 이익을 위해 생산된 상품이라 하더라도 거기에 '국가'라는 이미지가 입혀지면 달라진다.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그것의 소비가 곧 애국이 된다. 평가도 달라진다. 제목에 '국가'라는 말이 없었으면, 작품에 감성으로 버무린 애국 코드가 없었다면 과연 영화 <국가대표> 가 롱런하며 관객 780만명까지 끌어 모을 수 있었을까. <해운대> 불법동영상이 유포됐을 때 국민들이 보인 반응 역시 마찬가지다.

▦문화 애국주의는 '위기'의 산물이다. 1990년대 말 미국의 거센 압력 속에서 스크린쿼터를 지켜냈던 것도 그렇고, 그때부터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올라간 것도 그렇다. 한국영화산업의 붕괴를 우려하는 올해, 다시 1,000만 영화가 나왔다. 1970, 80년대 완성도가 형편 없는 작품에 욕도 못하고"그래도 한국영화니까, 우리가 봐 주지 않으면 누가 보나"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던 것도 위기의식에서 나왔다. 그래서 때론 그것을 아예 마케팅 전략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 2007년 일부 평론가들이 노골적으로 빈정거려 네티즌들의 비난을 샀던 심형래의 <디워> 가 그 예다.

▦문화 애국주의는 '국산품을 애용 합시다'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가상이든 실제든 반드시 '적'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도 우리보다 강한 국가여야 한다. 영화에서는 당연히 미국이다. <쉬리> 가 흥행(630만명)의 새로운 역사를 연 것도 "우리도 미국(할리우드)처럼 만들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디워> 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적(미국시장)의 소굴로 들어가 직접 결투를 벌이는 용기를 과시했다. <괴물> 역시 알게 모르게 괴수영화의'지존'인 일본을 적으로 의식하게 만들었다. 드라마 <주몽> 에는 중국이라는 '적'이 있었다.

▦ <주간한국> 이 29일자에'애국주의 그리고 대중문화'를 특집으로 다뤘다. 우리 대중문화에 뿌리깊게 퍼져 있는 애국주의가 어떻게 생산되고 소비되는지를 파헤쳤다. 민족정체성의 표상이기도 한 문화 애국주의는 상업주의와 결합, 문화의 소비와 의식을 왜곡하고, 맹목적 배타주의와 국수주의를 부추기기도 한다. 그렇다고 마냥 나쁘다고 할 수도 없다. 분명한 사실은 시대착오적 인습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문화 애국주의는 새로운 분배방식을 통해 여전히 대중적 호소력을 지니고 있으며, 결정적인 순간에 문화경쟁력을 높인다는 것이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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