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에 EBS(한국교육방송공사)는 어떤 존재일까. 같은 공중파 방송사인 KBS나 MBC와 동일 선상에 놓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교육방송'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다른 종합 채널과의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판단하는 지도 모르겠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공개 석상에서 EBS를 도마에 올려 운영 방향과 문제점, 개선점을 제시하는 등의 나름의 코멘트를 했다는 얘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
새 정부는 1년이 넘도록 그렇게 EBS를 먼발찌에서 바라보는 관망자 역할에 머물렀다. 그런데 지난 6월을 기점으로 상황이 돌변했다. 정부가 사교육 경감대책을 발표하면서 치솟는 사교육비를 줄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울 수 있는 '무기'로 EBS를 지목한 것이다. 이른바 'EBS 내실화 방안'이었다. 수능 강의 파견 교사제를 도입하거나, 사설 학원 스타 강사를 영입하는 식의 내용이 들어있다.
여기까진 그럭저럭 봐줄만 했다. 노무현 정부 때도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 EBS 수능 강의 활성화 대책 등 여러 묘안들을 동원한 적이 있으니, 따지고보면 새삼 스러울 것도 없었다.
하지만 지난달 하순 최시중 위원장의 발언이 있은 뒤 EBS는 소용돌이에 휩싸인 분위기다. 그가 기자간담회에서 던진 말에는 EBS를 대하는 현 정부의 시각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EBS가 과도한 사교육비 등 우리나라 교육문제를 푸는 데 제 몫을 다했다고 보기 힘들다. 정치적 고려 없이 식견과 추진력, 교육 문제에 대한 개혁적 열정을 가진 분을 새 사장으로 뽑아 'EBS 다운 EBS'를 만들 생각이다.", "EBS 역량의 80%를 사교육 억제에 활용하겠다. 3년 내에 사교육비를 20% 줄이고 EBS 시청률과 만족도를 두배 증대시키겠다."
이쯤되면 방통위원장의 말이라기 보다는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언급이 아니냐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 만 하다. EBS를 '온라인 방송 학원' 따위로 여기는 듯 했다.
EBS는 지금 정체성 혼란에 직면해 있다. 최 위원장 발언과 교과부의 사교육 경감 대책이 나온 이후 '교육'에 방점 찍기를 강요당하고 있다. 수능 강의 등 학습 프로그램 공급 역할에 충실해 '사교육과의 전쟁'에서 이겨달라는 주문을 묵시적으로, 때로는 명시적으로 받고 있다.
정부가 EBS를 사교육의 대척 기관으로 인식하고 있는 주된 이유 중 하나가 예산 지원 때문일 것이다. 교과부가 연 300억원 가량을 수능 방송 및 영어 채널 운영비 등 용도로 지원하고 있고, KBS가 받는 수신료의 3%(연 150억원 가량)를 주고 있어 간여는 당연하다는 입장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EBS를'학습용 방송'으로 끌고가려는 시도는 옳지않다는 생각이다. 2000년 공사 체제를 갖췄을 때 부터 EBS는 정부 손을 떠난 공중파 방송 기관이었다. 주인은 정부가 아닌 시청자라는 의미다. 4개 TV 채널과 1개 라디오 채널을 수능 강의와 어학 등 학습 프로그램으로 가득 채우는 것은 코미디다. 학습 프로그램과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적절히 배분해 <수능 강의> 외에도 <아이의 사생활> <방귀대장 뿡뿡이> 등을 함께 볼수 있도록 판을 벌이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선임에 진통을 겪고 있는 차기 사장이 교육과 방송을 두루 꿰고 있는 전문가여야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방귀대장> 아이의> 수능>
김진각 교육전문기자ㆍ정책사회부 차장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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