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어느 폐허. 푸른 곰팡이가 슨 듯한 헐벗은 벽이 흉물스럽다. 그 안으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이내 화염과 연기가 난무하는 긴박한 상황이 연출된다.
무력한 인간을 대변하는 16명의 남녀 무용수들은 서로의 몸을 맞대는 것으로 최소한의 안정을 찾는다. 이들의 입은 침묵을, 눈은 체념을, 몸은 고통을 머금고 있다. 이들에게 생존 외 무엇을 인식한다는 것은 사치다.
2005년 지구촌 곳곳이 이런 모습이었을 게다. 인도네시아를 덮친 쓰나미,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런던의 폭탄 테러, 파키스탄의 지진.
'게차이텐'(潮流ㆍ조류)은 제2의 피나 파우쉬라 불리는 독일 표현주의 현대무용가 사샤 발츠(46)가 그 해 창작한 작품으로, 이런 재난 속 인간 군상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몸을 하나의 언어로 여기는 사샤 발츠는 실험적인 무대를 시도하는 유럽의 대표 안무가다. 1997년 '코스모나우텐 거리'와 2004년 '육체'로 국내에 소개됐으며, 특히 '육체'는 몸의 상품성을 나신에 가깝도록 적나라하게 표현해 국내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무용평론가 문애령씨는 그를 "예쁘게 꾸미거나 특별한 기교를 과시하지 않지만, 주제를 집약시켜 표현하는 능력이 있다"고 소개했다.
이번에 공연되는 '게차이텐'은 사샤 발츠가 '인간은 위기의 순간에 어떻게 대처하고 그것을 극복하는가'를 고민한 끝에 만든 작품이다. 그는 안무를 위해 화재, 지진, 바이러스의 침입 등의 상황에서 그룹과 개인이 보이는 양상을 조사하고, 무용수들에게 즉흥 무용을 요구해 일부 동작을 차용했다.
음악은 첼리스트 제임스 부쉬가 라이브로 연주하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으로 채워진다. 이 바로크 첼로의 선율은 엄숙하고 비장한 분위기를 형성하며, 관객들이 무대 위의 충격적인 상황을 차분히 받아들이도록 유도한다.
사샤 발츠는 '게차이텐'에 대해 "처음으로 리얼리즘을 시도한 작품"이라며 "이 불편하고 즐겁지 않은 몸짓을 통해 사회정의나 인간 본성에 대해 성찰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25, 26일 LG아트센터. (02)2005-0114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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