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시작되던 7월, 배우 조정석(29)씨는 무대 밖에서도 모리츠로 산다고 했다. 대사에 따르면 모리츠는 "겁 많고 실어증에 가까운 정신박약아".
비뚠 걸음걸이가 보여주듯 극중 그는 주류 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채 결국 자살을 택하는 비운의 사춘기 소년이다. 지금까지도 모리츠와 한 몸이라면, 조씨의 마음은 성할 턱이 없겠다.
"아우, 이젠 그렇게 안 살아요. 한 달 반이 지나니, 정말 우울증이 오더라고요. 감정이 북받쳐서 집에 가는 길에도 눈물이 났다니까요." 20일 공연장에서 분장을 말끔히 벗은 그는 다행히 '배우 조정석'으로 돌아와 있었다.
역할에 푹 빠져든 덕에 그는 초반부터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매일 공연에서 자살 직전까지의 감정에 빠지다 보니 무력감이 커졌고,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날도 잦아졌다.
'헤드윅'의 헤드윅, '올슉업'의 채드, '그리스'의 로저 등 주역을 맡으며 각각의 개성을 무리없이 넘나들던 그였다. 그러나 단기간 공연된 이 작품들에 파묻혔다 한들, 혼자서 6개월 동안 한 가지 역을 소화해야 하는 이번 같지는 않았다.
"이러다간 큰일 나겠다 싶었죠. 요즘은 공연이 없는 월요일마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요." 그는 '앞으론 무대에 오른 순간에, 모든 집중력을 쏟아붓자'고 결심했고, 우울함을 많이 극복했다고 했다.
"신선한 연출에 소름이 돋았다"는 첫인상을 회상하며 그는 곧 진지하게 작품 자랑을 늘어놨다. "특별한 장치 없이 배우의 등장만으로 장면이 전환되고, 자살할 땐 총소리 대신 암전과 기타 스트링이 이어지는 것. 너무 멋지지 않나요?"라고 되묻기도 했다.
"100년 전이 배경이지만 19세기 말 독일의 모습은 가부장적인 우리나라와 닮아있다"면서 "청소년들의 성 문제는 시공을 초월하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여자친구를 임신시키는 멜키어나 피아노 선생님에게 욕망을 느끼는 게오르그 등 모든 역이 탐난다"는 조씨는 작품에 푹 빠져 있었다. 실제 나이의 절반밖에 안 되는 인물을 연기하면서 그는 매번 손수건 하나를 흠뻑 적실 정도로 엄청난 체력과 감정을 소모했다.
"모리츠가 야한 그림을 보고 전율하는 부분에선 중2 당시 처음 성인비디오를 봤을 때를 떠올렸고, 자살할 때는 아버지와 조카의 죽음을 생각했어요." 연출가 김민정씨는 이런 그를 두고 "첫 공연 때부터 능숙해서 늘 든든했던 배우"라며 "끝까지 체력을 잘 유지하는 것 외엔 더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매죽남'(매일 죽는 남자). 팬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그러나 동시에 매일 새로 태어나고 있지 않은가. "장기공연이니만큼 매번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열정 가득한 그에게는 차라리 '매사남'(매일 사는 남자)이 더 어울리는 것 같았다. 공연은 2010년 1월 10일까지, 두산아트센터 (02)708-5001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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