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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이상봉의 Fashion & Passion] <16> 내게 일어난 특별한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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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이상봉의 Fashion & Passion] <16> 내게 일어난 특별한 생일

입력
2009.09.23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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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을 위한 모임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 만나는 모임도 있고, 문화생활을 즐기기 위해 만나는 모임도 있고, 운동을 위해 만나는 모임도 있다. 최근 젊은 친구들은 서로 목적에 맞는 사람들끼리 자발적으로 뭉치는 동호회라 불리는 적극적인 만남에 익숙해 있지만, 시작이 낯선 이런 만남은 여전히 나에겐 생소하게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정기적인 만남은 더욱더 자신이 없다. 그래서 여태껏 그래왔듯 그저 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부르는 편안한 자리에 그때그때마다 참석해 반가움을 나누는 것이 내 유일한 사적 만남의 전부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 얼마 전부터 '모임'이라고 부를 만한 관계가 형성되었다. 처음에는 각자 친분이 있는 사람들과의 일대일 만남이었지만, 상대방끼리도 서로 아는 사이였고 자연스럽게 함께 하다 보니 그럭저럭 모임이라고 할 만한 규모가 되었다.

특별한 이름도 없고 목적도 없지만 자주 얼굴을 내미는 그런 만남이 내 생활 안에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에는 나를 포함해 임옥상, 장사익, 전수천, 박범신, 안석환, 방송작가 이윤수, 가수 김수철, 그리고 요즘 <엄마를 부탁해> 라는 소설로 100만부 돌파해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소설가 신경숙씨도 함께 하고 있다.

여기에 모인 대다수 분들의 공통점을 굳이 들자면 '평창동'이라는 것과, '문화인'이라는 것을 들 수 있지만 이것이 자격조건이 될 리는 만무하다. 단지 오래 전부터 알음알음 친분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이다 보니 이런 모임이 만들어졌고, 동네가 비슷하다 보니 더 자주 모이게 되면서 이런 공통분모 비슷한 것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일 뿐이다.

모임엔 정기적으로 못 박아 놓은 규칙도 없다. 언제든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으면 부담 없이 함께할 수 있는 편안한 자리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얼마 전엔 우리 중 가장 연장자인 소설가 박범신 선생의 신작 <고산자> 의 출판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고, 연극배우 안석환의 공연을 함께 관람하기 위해 모이기도 했다.

아마 이 다음은 신경숙씨의 100만부 돌파기념을 축하하기 위해 다시 만나지 않을까? 이처럼 서로 전시나 축하할 일이 있으면 다들 흔쾌히 그 자리에 참석해 기쁨을 나누는,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또 다른 예술을 하는 사람들을 통해 웃을 수 있는 그런 자리다.

그런데 얼마 전 이분들이 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 나는 여태껏 내 생일날 사람들을 초대해 케이크를 자르며 파티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저 생일에는 집에서 끓여주는 미역국과 회사에서 직원들과 떡 한 시루를 돌리며 덕담을 나누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무엇보다 생일이라고 유난을 떠는 것도 성격에 맞지 않았다. 또한 내 생일이 시기상 늘 패션쇼 준비를 하는 막바지에 있어 본의 아니게 조용히 지나가길 바랐던 마음도 컸다.

그런데 이번엔 이들 덕택에 아주 특별한 생일상을 받게 되었다. 얼마 전 김수철이 시청 앞 광장에서 공연을 해 멤버들이 모였고, 그 때 나는 같은 시간에 송도에서 열린 세계의상페스티벌 전야 패션쇼를 치르고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 그 후 모두들 나를 위한 즉석 퍼포먼스까지 계획해 가며 생일약속을 잡은 것이었다.

생일 축하를 위해 모인 곳은 평창동 언덕에 있는 작은 스위스 레스토랑이었다. 우리가 자주 모임을 갖고 덕담을 나누는 일종의 아지트 같은 곳이다. 고맙게도 대학시절 내 선배이자 우상이었던 연극배우 정동환 선배도 소식을 접하고 뒤늦게 처음으로 우리 모임에 합석을 했다. 모두들 나를 위해 단단히 준비를 한 모양이다.

테이블에는 방송작가인 이윤수씨가 특별히 주문한 턱시도 모양의 커다란 케이크가 올려져 있었는데 그 위에는 한글이 아름답게 장식돼 있었고, 어디서 구했는지 내 사진도 붙어 있었다. 너무 감격스러웠고 고마웠다.

여태껏 못 받은 케이크를 보상하고도 남을 정도로 근사하고 멋진 케이크였다.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만일 이윤수씨가 없었다면 우리의 이런 근사한 모임이 만들어지지 못했다고 할 만큼 문화계의 마당발인 그녀의 역할이 아주 크다.

생일선물은 더욱 감동이다. 김희경씨는 특별히 내 얼굴을 그린 그림을 주었고, 전수천씨도 자신의 소중한 작품을, 김수철은 클립을 붙일 수 있는 미니 자동차를, 안석환은 화장용품을, 박범신 선생은 헝겊 냅킨에 즉석에서 그린 그림을 주었다.

장사익 선생은 손님과 만나는 와중에도 시간을 내 동백아가씨를 손수 적은 부채를 전해 주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이 분들이 기획한 즉석 퍼포먼스.

내 머리를 캔버스 삼아 임옥상씨는 한글로 축하글을, 전수천씨는 물감으로 즉석에서 그림을 그렸다. 짧다면 짧을 수도 있는 생일파티였지만 나는 초등학교에 처음 등교한 아이처럼 색다른 즐거움을 만끽한 잊을 수 없는 시간이 됐다.

만남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하지만 아무런 목적도 없고 서로 간에 바라는 것도 없이 그저 만나서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그런 만남은 흔치가 않다. 여기에 모이는 모든 사람들은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로 서로서로 나누는 정은 사랑방에 퍼지는 은은한 차와 같은 향기를 풍긴다.

머리를 맞대고 목에 힘을 주어 토론하지도, 누구를 비판하거나 질타하지도 않는다. 좋은 일은 기뻐해주고 어려운 일은 보듬어주고 슬픈 일은 함께 나눈다. 그래서 내가 평창동이 아닌 선릉에서 작업을 해 매번 늦게 자리를 함께 하지만 내 마음은 항상 먼저 그 곳에 도착해 하루 종일 머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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