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창제는 엄청난 문화 전쟁의 결과였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한글날을 앞두고, 한글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한 연극 '누가 왕의 학사를 죽였나'가 버전업한다. 극단 독립극장은 지난해 8월 초연했던 이 작품을 손질, 미스터리 연쇄살인극 쪽으로 바싹 밀어부쳤다.
이정명의 장편소설 <뿌리 깊은 나무> 의 구도를 기본으로, 실용경제적 개혁군주 세종을 둘러싼 암투의 현장에 확대경을 들이댔다. 개혁파와 수구파, 실용학과 성리학 등 당대의 첨예한 대립상을 시각화해 내는 배우들의 연기를 비롯해, 한층 다듬어진 극적ㆍ시청각적 장치가 이번 연극의 백미다. 뿌리>
한글 창제에 반대하는 수구파들이 집현전 학사를 암살한다는 팩션적인 설정 아래, 궁궐 내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상황을 펼쳐 보인다.
한글 반포 7일 전이던 1443년(세종 25년), 경복궁 우물 속에서 집현전 학사의 시체가 발견된다는 가정으로 당대에 있었을 법한 권력투쟁의 양상을 펼친다.
애국이라는 뜻은 같되 실용과 명분으로 갈라진 세력들의 대립을 독특하게 분할된 공간구조 속에 병치시킨 것 등은 역사극의 틀을 넓히는 시도다.
4개의 궁궐 문을 수시로 움직일 수 있게 해 무대공간이 분할되면서 극적 긴장감이 높아진다. 전통 격자무늬의 그림자가 투영된 가운데 배우들이 펼치는 춤사위와 마임 효과 등 한층 격상된 감각적 장치들이 더욱 풍성해진 무대를 예고한다.
각색ㆍ연출자 박승걸씨는 극의 특징을 "암전이 완전히 배제된 상황에서 전개되는 추리극이 갖는 긴장감"이라고 압축했다. 고동업, 신현종 등 출연.
26일부터 10월 11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화~금 오후 8시, 토ㆍ일 오후 3시ㆍ7시, 일 오후 3시. (02)3272-2334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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