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아이가 고등학생 때 '간지'란 말에 전혀 다른 뜻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제 친구 얘기를 하면서 "간지 난다"고 했는데, 한동안 그 대상이 된 친구를 막연히 질 나쁜 아이려니 오해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사람에 대해 말하는 거니까 십이간지의 干支는 아닐 것이고 '간사한 지혜'를 뜻하는 奸智일 테니까. 나중에 그걸 '폼 나고 멋있다'는 뜻으로 쓴 걸 알고도 당초의 느낌 때문에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일본어 간지(感じ=느낌)의 변용이라는 이 용법의 간지는 노무현 전 대통령도 지지자들로부터 '노간지'라는 애칭으로 불릴 만큼 일상화한 단어가 됐다.
▦요즘엔 스타일, 몸매, 성격, 생활태도에 이르기까지 온 데에 붙여지는 '엣지'로 헷갈렸다. 틀림없이 영어 'edge'나 'edgy'의 발음일 테니 분명 모 나고 뾰족하고 까칠하다는 정도의 뜻이려니 한 게 또 잘못됐다. 최근의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자주 쓰는 바람에 유행어가 됐다는데, 이것 역시 '날이 서게 똑 부러지고, 깔끔하고, 멋지고…'하여간 그렇게 좋은 의미란다. 패션, 마케팅업계 등지에서는 오래 전부터 그런 뜻으로 써왔다고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원래 엣지의 의미인 모서리나 칼날 같은 데서 연상되는 싸늘함 때문에 이번에도 용법과 느낌이 합치하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개그프로그램 등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면 대개 일상의 신종어휘는 10~20대가 생산자거나 유포자가 된다. 더욱이 속도와 간편성에 목 매는 인터넷, 모바일 통신수단이 발달하면서 최근 몇 년 동안의 신종어휘 생산량은 가히 전례가 없을 정도다. 가장 흔한 '넘사벽' '엄친아' '솔까말' '지못미' '완소남' 따위의 줄임말서부터 '오나전'(완전) 처럼 습관적인 키보드 오타에서 비롯된 것에 이르기까지 그 생성동기와 형태가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너무 단순하고 유치해 어휘의 생명력이 어떨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사고의 기발함과 자유로움이 느껴져 유쾌하기도 하다.
▦그러나 '스타일이 멋지다'라는 의미로 혼용돼가는 '간지'나 '엣지'는 그다지 흔쾌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의미도 한참 동떨어진 외국어를 가져다 억지스럽게 변용한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 데다, 그 폭발적 확산도 밖으로 드러나는 외양이나 스타일에만 주목하는 얄팍한 세태의 반영으로 보여 그렇다. 그래서일까? 요즘 청문회를 보면서도 이 말들이 자주 떨떠름한 느낌으로 떠올려지는 것은. 자못 그럴 듯하게 경력을 관리해온 것 같은 이들이 막상 헤쳐보니 번번이 속 내용은 영 아니라는 실망감 때문이다. 그러게 겉으로 보기에 '간지'나고 '엣지'있는 게 꼭 좋은 건 아니라니까.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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