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친서민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서민들의 고통이 심하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서민금융 확대는 중요하다. 서민층의 가장 큰 어려움이 '돈'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채무조정과 전환대출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한 데 이어 이달 중 더욱 강력한 대책을 내놓는다고 한다.
고금리 부추기는 정보 독점
정부의 적극적 노력을 반기면서도 서민금융 문제의 핵심인 정보흐름의 문제는 다시 그냥 넘기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모든 금융 문제에는 정보흐름의 문제가 존재한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국제 금융위기로 발전한 데에도 어느 금융회사가 얼마나 부실 모기지를 갖고 있는지, 어느 회사가 지급불능 상태인지 정보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이 주된 원인이다.
방글라데시의 서민은행 그라민은행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정보흐름 문제를 적절히 해결한 때문이다. 소액대출은 일일이 심사하고 모니터 하는 비용이 수익보다 큰 탓에 은행들이 취급을 꺼린다. 그라민은행은 그룹대출 방식을 통해 차입자 그룹의 자체 심사(peer selection)와 동료 모니터링(peer monitoring)을 유도,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효율적인 대출을 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서민금융과 관련해 흔히 대부업체의 고금리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그 이면에는 차입자들에 대한 대부업체의 독점력이 도사리고 있다. 만약 차입자들을 대상으로 대부업체와 금융회사, 또는 대부업체끼리 충분히 경쟁하게 한다면 과도한 금리를 부과하기 어려울 것이다. 차입자의 신용도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금리를 부과할 경우 경쟁업체가 좀 더 낮은 금리로 고객을 유인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업체의 독점적 지위는 정보독점과 연결돼 있다. 우리나라 대부시장은 상품, 고객, 지역별로 분할돼 있는 데다 다른 금융회사와 정보공유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우량고객에 대해서도 고금리 부과 등 대부업체의 독점력 행사가 가능하다. 높은 금리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원리금을 갚아 나가는 고객은 제도권 금융회사에도 훌륭한 잠재 고객이지만, 이런 신용정보가 알려지지 않으면 제도권 금융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대금업이 발달한 일본의 경험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일본도 고금리 등의 폐해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몇 년 전에는 이자 상한을 내리는 문제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서민층 구석구석에 스며든 음성적 대금업체들까지 감안할 때 이자 상한을 내린다고 별 다른 효과를 얻기 어려우며 그보다는 신용정보를 공유하도록 하는 게 나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신용정보 공유로 물꼬 터 줘야
이런 의견을 반영한 결과인지 일본 정부는 최근 대금업자들이 고객의 신용정보를 국가가 지정한 신용정보기관에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했다. 물론 이 조치가 음성적 업체들까지 모두 아우를 수는 없겠지만 단순히 이자 상한을 내리는 것보다는 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
벼에 물을 한 번 준다고 잘 자라는 것은 아니다. 논의 물꼬를 잘 조절해야 한다. 서민금융도 정보흐름의 물꼬를 터주어야 한다. 이웃 일본의 논이 잘 되는지 지켜본 다음 우리 논의 물꼬를 조절하기에는 서민층의 금융 사정이 너무나 어려운 현실을 정부는 헤아려야 한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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