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예외는 있어도 한국인은 애국심이 강한 편이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온 국민이 금 모으기에 나섰던 것이나, 중국인이 한국 사람에게서 배워야 할 최고 덕목으로 '애국심'을 꼽는 것만 봐도 우리국민의 애국심은 세계 평균 이상이다. 최근 인기그룹 2PM의 박재범이 '한국 비하' 논란에 휩싸여 중도 하차하게 된 것도, 비록 맹목적이고 비뚤어진 측면이 있지만 끝을 따라 가면 애국심과 맞닿는다.
그런데 2009년 9월 현재 한국 증시에서 애국심과 거리가 먼 일들이 빚어지고 있다. 바로 펀드 환매사태다. 올해 봄 시작된 환매 사태가 갈수록 심각해져 코스피지수가 1,700선을 넘어선 뒤에는 그 규모가 하루 4,000억원(17일 4,022억원)을 넘어설 정도다. 6개월 누적 순유출 규모는 5조3,955억원으로 2002년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환매 이유는 뭘까. 역설적이지만 주가가 오르기 때문이다. 금융위기가 강타했던 지난해 말 수익률이 반토막 났을 때 '다시 펀드하면 성(姓)을 간다'고 했던 투자자들이 주가 상승으로 원금을 회복하자 서둘러 실제 행동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반면 같은 기간 외국인은 환매자금 마련을 위해 기관투자자가 내놓고 있는 주식들을 집중 매수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3개월간 누적 순매수 규모가 15조원을 넘어선 상태다. 국내 증시 상장기업 대부분이 한국 기업인 것을 감안하면, 한국인들이 '우리나라 기업의 미래는 없다'고 버린 주식을 외국인이 사들이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일반 투자자의 이런 '비애국적' 투자 행동이 금전적 손실까지 동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연초 이후 이달 16일까지 8.5%(7조2,659억원) 감소한 반면 순자산 총액은 35.0%(9조4,596억원)나 급증했다.
펀드 설정액 대비 순자산 비율도 지난해 말 65.1%에서 95.9%로 30.8%포인트나 높아졌다. 순자산 총액이 늘어났다는 것은 펀드 투자자들의 이익이 그만큼 불어났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해당 기간에 환매한 사람은 그만큼 손해를 봤다고 할 수 있다.
자기 판단과 자기 책임하에 이뤄지는 만큼 펀드를 사고 파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이 참에 주식이나 펀드와는 인연을 끊겠다'는 투자자들은 조금만 더 기다리는 게 현명할 듯하다. 환매의 유혹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면 '안 파는 게 애국하는 길'이라는 생각을 해도 괜찮을 듯하다.
기자가 책임도 지지 못할 권유를 하는 이유는 "펀드 환매에 열중하는 개인 투자자를 보면, 귀중한 재산을 외국인에게 갖다 바치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한 증권사 대표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기 때문이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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