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귀걸이는 2,000원인데 5,000원 주셨으니까 3,000원 드릴게요." "여기 영수증 받아 가세요."
발달장애아동 특수학교인 서울 일원동의 밀알학교 건물 2층 한 켠에는 작은 가게가 하나 들어서 있다. 이름은 '꿈이 있는 가게'. 3평짜리 가게에선 밀알학교 학생들이 직접 만든 액세서리와 컵 등을 이웃 주민과 방문객들에게 판매한다. 물건을 파는 점원들도 이 학교 학생들이다.
중증 자폐증을 앓고 있는 조현성(16)군은 몇 달 전만 해도 가게를 찾는 손님들 얼굴 쳐다보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지금처럼 또렷한 발음으로 물건값을 손님에게 일러주고, 거스름돈을 정확하게 건네줄 수 있으리라곤 조군 본인도, 교사들도 상상하지 못했다. 물론 완벽한 판매원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손님들을 보고 웃어야 한다'고 몇 번씩 머릿속으로 다짐해보지만 표정 관리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러나 지금은 판매일지 기록은 물론이고, 그날 번 돈을 은행에 가져가서 예치할 수 있을 정도로 점원 역할을 톡톡히 소화해내고 있다.
조군이 이렇게 달라진 데는 대학생 형과 누나들의 헌신적인 도움이 있었다. 장애인 등 소외계층의 자립을 돕기 위해 경제교육 활동을 하고 있는 성균관대 학생들 모임 'SIFE(Students In Free Enterprise)'가 밀알학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6년 11월. 밀알학교 교사들은 장애학생들이 졸업 후 생활인으로 자립하려면 기본적인 상거래를 익혀야 한다고 판단하고 가게 문을 열긴 했지만, 막상 학생들에게 상거래 규칙을 가르치기가 쉽지 않았다.
교사들은 경영학과 학생들로 구성된 SIFE에 도움을 청했고, SIFE 회원들은 지난 3년여 동안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왔다.
지금까지 밀알학교 판매실습과정을 거쳐간 학생은 모두 30여명. 교사들은 60여명의 고등부 과정 학생들 가운데 읽기와 말하기, 쓰기 등 기초학습을 모두 마치고 졸업 후 취업에 도전해 볼만하다고 판단되는 학생을 실습생으로 선정했다.
SIFE 회원들은 매일 오전, 오후 번갈아 가며 이 곳을 찾아 손님들에게 인사하는 법, 물건을 진열하고 포장하는 법, 거스름돈 계산하는 법 등을 1대1로 조목조목 가르쳐왔다.
올 초부터 활동한 경영학과 2학년 박서영씨는 "처음에는 예상했던 것보다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 훨씬 힘들었다"고 말했다. 실습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들은 전체 학생 가운데서 장애 정도가 덜한 이들이지만, 같은 학년이라 해도 학습 능력의 편차가 크다. 박씨가 교육을 맡은 공영조(16)군도 혼자서는 손님을 상대하기가 어려운 상태였다.
박씨는 손님이 처음 왔을 때 해야 할 인사말과 어떤 태도로 손님을 맞아야 할지 등에 대해 몇 번이고 설명했지만, 공군은 집중하지 못했다.
그러나 박씨는 "영조가 그래도 엄청나게 발전한 것"이라며 "아이들이 조금씩 변해가면서 손님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박씨는 연신 딴전을 피워대는 공군이 때론 힘에 부쳤지만, 밝은 표정으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공군을 가르쳤다.
밀알학교 판매실습과정의 성과는 아직 어디 내세울 정도는 아니다. 지금까지 이 과정을 거쳐간 학생 가운데 취업에 성공한 학생은 각각 우체국과 제과점에 일자리를 얻은 2명뿐이다.
이 학교 배호환 교사는 "대학생들의 봉사활동이 지역 주민과 학부모들 사이에 알려지면서 가게를 찾는 손님이 늘어나 아이들이 일반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것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성과"라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프로그램을 확장해 바자회까지 열어 170만원의 판매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박민정 교사는 "이 프로그램 덕분에 학생들이 사회활동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을 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도 발달장애아동들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 같다"며 "발달장애아동들이 일반인들과 어울려 함께 일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이 마련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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