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 여파로 개인 파산신청이 늘고 있다고 한다. 2004년 1만2,317명이었던 개인파산 신청 건수는 올 들어 8월까지 7만4,942명에 달했다. 부모의 빚을 떠안지 않으려는 상속 포기 소송도 급증세다. 이혼가족이 늘면서 어머니가 다른 자녀들이 아버지 유산을 놓고 싸우는 경우도 흔해졌다. 그런데 우리 법조계에서 소송이 늘어난 배경을 분석한 게 맹랑하다. 변호사 과잉 공급으로 경쟁이 치열해지자 소송을 부추겨 법정까지 오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인구 10만명당 변호사 수는 17.4명으로, 미국의 2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 전문직 공급이 많은 선진국이라면 이해가 간다. 미국 변호사들의 소송 유치 경쟁은 유명하고, 의사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미국에서 뉴욕과 캘리포니아 지역의 허리디스크 수술 빈도를 비교ㆍ조사한 적이 있는데, 같은 인구를 기준으로 했을 때 캘리포니아 지역의 수술률이 뉴욕의 2배나 됐다. 캘리포니아 지역의 척추외과 의사 수가 뉴욕보다 2배 가량 많은 게 원인으로 밝혀졌다. 미국 전체의 디스크 수술 빈도가 스코틀랜드나 영국의 5~10배에 달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의료인의 과잉 공급이 불필요한 수술을 양산하는 셈이다.
▦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면 우리 사회에서도 과잉 공급의 폐단을 쉽게 찾을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부패 문제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신자유주의가 반부패를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처방으로 제시한 게 영향을 미쳤다. 부패 경제학에 따르면 부패가 심한 나라일수록 대규모 건설공사를 많이 진행한다. 대형 공사가 많을수록 부정부패의 기회와 수익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국제투명성위원회가 발표한 한국의 부패지수는 10점 만점에 5.6점으로 투명한 나라(7점 이상)와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4대강 살리기 등 대형 토목공사가 줄줄이 대기 중이다.
▦ 국내 택시들은 불친절하기로 악명이 높다. 과잉 공급으로 수익성이 떨어지다 보니 서비스에까지 신경을 쓸 여유가 없어서다. 물질적으로 풍요한 선진국일수록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려 미래에 대비하는 게 합리적이지만, 국가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일자리와 소득이 감소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렇다고 소비를 너무 많이 하면 물가가 오르고 저축이 줄어 투자자금이 부족해진다. 무엇이든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공급과 수요 사이에도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