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비리는 개탄하기도 지겨운 사안이다. 수십 년간 이토록 일관되게 문제가 되고 그때마다 국민적 공분을 불러 일으키면서도 근절되지 않는 범죄도 드물다. 뿌리가 뽑히기는커녕 이번에 적발된 환자 바꿔치기에서 보듯 기피수법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2004년 프로야구 선수가 100명 가까이 연루돼 파장을 일으켰던 소변 조작을 비롯해 어깨탈구수술 등 고의적인 신체손상행위도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
남북 대치상황에서 군사적ㆍ재정적으로 국민개병제가 불가피한 우리사회의 특성상 병역비리는 언제나 폭발력이 엄청난 사안이다. 사회경제적인 계층고착화 문제가 심각해지는 현실에서 병역은 전 국민이 강제로라도 평등한 기회를 누리는 거의 유일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조건에 관계없이 국가구성원으로서의 동질성과 유대감을 확인하고 키우는 극히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병역비리는 국민통합을 훼손하고 국가의 기간을 흔드는 중범죄이다.
병역기피행위에 대한 처벌이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닌데도 비리가 빈발하는 데 대해서는 역시 사회인식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지도층의 행태에 상당한 책임이 돌려질 수밖에 없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경찰이 한창 병역비리 수사를 벌이는 와중에 한편에서 병역을 피한 고위 공직후보들이 청문회에서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 풍경은 코미디다.
청소년들의 가치관에 현실적으로 큰 작용을 하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들의 경우도 다를 것이 없다. 디스크에 정신장애, 뇌경색 등 갖가지 질병을 이유로 병역을 면제 받은 이들이 경기장과 TV화면을 버젓이 누비는 모습을 보면서 병역의 신성함을 설득하기는 어렵다.
병역은 행여 한가한 국가주의적 시각으로 재단되거나, 선택의 논리를 개입시킬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병역의무는 국가의 존립과 국민형성, 국가통합에 여전히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을 새삼 분명하게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기피자에 대한 추상 같은 단죄와 함께 시회지도층의 각성과 솔선수범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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