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2월 하와이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개막전인 SBS오픈.
조건부 시드권자 신분이었던 루키 최나연(22ㆍSK텔레콤ㆍ건국대 체육교육학과 3년)은 대회 스폰서사인 SBS의 초청선수로 출전 통보를 받고 대회 1주일 전부터 하와이로 날아가 공식적인 LPGA투어 데뷔전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정작 대회 하루 전날까지 LPGA투어 사무국의 출전 선수 엔트리에는 최나연의 이름이 빠져있었다.
하와이 현지 선수가 끼어들면서 최나연이 밀린 것이다. 대회 출전은 커녕 짐을 싸서 돌아와야 할 상황에 발만 동동 굴러야했다. LPGA사무국과 SBS측의 밀고 당기는 협상 끝에 대회 개막 전날 밤 7시가 되어서야 엔트리 138명에 최나연을 추가해 139명을 출전시키기로 하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이 같은 아픈 사연이 있었던 최나연이 LPGA투어 55번째 대회 출전 만에 첫 우승의 기쁨을 누리며 챔피언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그것도 톱스타 20명만 출전한 특급대회인 데다 '지존' 신지애(21)와 일본의 간판스타 미야자토 아이와의 우승 경쟁에서 최후의 승자가 된 것.
'얼짱' 최나연은 21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토리파인스 남코스(파72)에서 열린 삼성월드챔피언십 4라운드에서 1타를 줄여 최종합계 16언더파 272타를 기록, 2위 미야자토에 1타 차 우승을 차지했다.
'준비된 챔피언'이자 '박세리 키즈'의 보루 최나연이 마침내 그 결실을 보는 순간이었다. 최나연은 LPGA투어 데뷔 첫해인 지난해 두 차례 공동 2위에 올랐고 올해도 우승 없이 톱10에 9차례 드는 등 좀처럼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해 조바심을 냈다. 최나연도 이번 우승직후 "우승 악연의 저주를 마침내 끊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최나연은 9월 우승에도 깊은 의미를 부여했다. 국내대회에서 통산 3승을 거둔 최나연은 2006년 9월 KB스타투어 3차전과 2007년 9월 KLPGA선수권에서 우승했다. 통산 4승 중 3승을 9월 달에 거둔 '9월의 여왕'이다. 이른바 '얼짱 추녀(秋女)'다. 이번 대회 우승과 2007년 KLPGA선수권 우승은 9월21일 일자까지 똑같다.
우승상금 25만달러를 챙긴 최나연은 상금랭킹 9위(94만5,700달러)로 뛰어올랐고 한국 선수로는 올시즌 9승째다.
승부도 극적이었다. 2위 신지애에 2타 앞선 채 최종라운드에 나선 최나연은 2,4번홀에서 버디를 잡아 기세를 올린 뒤 6번홀(파5)에서는 이글까지 잡아내며 공동 2위였던 신지애, 미야자토를 7타 차로 따돌려 쉽게 우승하는 듯했다. 그러나 9~11번홀과 15번홀 보기로 4타를 잃어 미야자토에 1타 뒤진 2위로 밀렸다.
대역전패의 악몽이 떠오르는 순간 앞조에서 경기를 펼친 미야자토가 18번홀(파5) 두 번째 샷을 물에 빠트리면서 보기를 범했고, 최나연은 버디 퍼트를 성공시켜 재역전 드라마를 연출했다.
최나연과 맞대결을 펼친 신지애는 이날 2타를 잃어 합계 11언더파 277타 단독 3위로 대회를 마쳤다. 그러나 다승, 상금, 올해의 선수, 신인상 부문에서는 선두 자리를 굳게 지켰다.
정동철 기자 ba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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