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통 보수로 몰아붙인 이명박 대통령이 중도실용을 말하며 친서민 행보에 나서는 모습이 심히 불편했을 것이다. 조문 정국을 반전의 계기로 삼으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장외투쟁을 선언하며 미디어법 등 'MB 악법'을 목이 쉬도록 규탄했지만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 소식에 야당의 심기가 편할 리 없다.
국민과 소통하는 생활정치
그런데 또 개헌이라니. 이러다 계속 끌려 다니는 건 아닌지 두려워진다. 전매특허였던 친서민 슬로건을 빼앗겼다는 생각에 분통이 터졌을 것이다. 늘 하던 대로 거짓과 기만의 프레임을 들이대며 현혹되지 말라고 외쳤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묻는다. 뭐가 어때서?
인터넷 검색은 때로 별 거 아닌 걸 깨닫는 과정이다. 영어로 'green'을 찾다 보니 의외로 과거 독일의 적ㆍ녹 연정 기사가 줄줄이 뜬다. 아, 독일의 사회민주당(SPD)은 적색이고 녹색당(Grüne)은 녹색이었지. 한 때 녹색당은 사민당이 자신들의 이슈와 슬로건을 훔쳐갔다고 분노했다. 심지어 보수우익을 대표하는 기민당마저 녹색을 애용했다.
이제 녹색은 진보세력이나 야당의 전유물은 아니다. 적색 대신 필리핀산 노란색을 내세우며 '사회'보다 '민주'라는 말을 선호한 게 우리 진보세력이지만 녹색에 관한 영유권은 그리 확고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정통보수 이명박 정부가 녹색성장을 내세워도 놀랄 게 없는 일이 됐다. 오히려 지금은 녹색이 보수의 색깔이 된 건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든다.
이슈 선점 경쟁은 현대 정치의 일상이다. 지금도 이어지는 교조적 정치이념론에 따르면 이해가 되지 않는 이종교배가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다. '따뜻한 보수'니 정통보수의 친서민정책이니 하는 것은 새삼 얘깃거리조차 안 된다. 서민을 위한다고 말하지 않을 정당이 어디 있을까. 물론 보혁 모두 엄연히 전통적 지지층과 그들만을 위한 멜로디가 있다. 하지만 그런 색깔 구분은 어쩐지 진부한 느낌을 준다. 골수 지지자들을 위한 노래만으론 더 이상 승산이 없다는 게 지난 10년의 교훈이라면 교훈이다.
민주당이 향후 노선을 고심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 와중에 손학규씨로부터 들려오는 소식은 신선하다. 오랜 칩거 끝에 MB의 중도실용 노선과 친서민 행보를 사기와 위장으로만 비판하는 건 너무 안이하다는 쓴 소리로 운을 떼더니 곧 이어 전략공천 기회를 마다하고 수원 장안 재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정치인 개인으로서 그의 선택은 대범했지만, 잘못된 방법으로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는 없고 멀더라도 옳은 길이 지름길이라는 그의 말은 더 큰 공명을 자아낸다. 최근 민주당 쪽에서 투쟁 일변도 노선 대신 국민과 소통ㆍ호흡하는 생활정치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사실 민주당 내 온건파 사이에서 진작부터 있었던 얘기지만, 이제 좀 내놓고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는 게 중요하다. 어디 민주당뿐이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바라던 바이기도 했다. 야당이 제대로 서야 정치도 바로 설 수 있다. 역정을 내며 장외로 나가 결국 정치의 국외자 취급을 자초한다면 이는 국민뿐 아니라 여당에게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위기상황에서는 강경이 온건을 제압했지만, 이제는 좀 믿고 의지할, 선택할 수 있는 합리적 대안정당이 나오기를 바라는 말없는 다수의 바람도 헤아려 보아야 한다. 한 극단에 실망해서 다른 극단으로 쏠릴 것이라는 기대는 망상이다. 선명성 경쟁은 답이 아니다.
친절한 야당 기다리는 국민
일본 민주당의 집권 비결은 어쩌면 단순명료하다. 자민당을 대신할 정당으로 선택된 것이다. 국민의 마음을 얻으려면 극단정치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국민이 큰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 야당이 되어야 한다. 부자정권에서 친서민이 웬 말이냐며 목청만 돋울 게 아니라 차근차근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며 사려 깊게 설득하는 친절한 야당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게 현실이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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