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지 않는다면 삶은 벽에 갇힌 수용소나 다름없을 거야. 감시병은 없지만 달아날 수도 없다는 기분 나쁜 소문의 그곳, 현대의 질병 자체라는 악명의 그곳. 꿈의 내용을 글로 정리할 충분한 언어와 문장이 없다면, 그건 어떤 유형의 인간에게는 질병일 뿐 아니라 혹독한 형벌이나 마찬가지지."(117쪽)
1990년대 소외된 아이들의 연애와 배회를 감각적인 문체로 그려내며 신세대 작가로 불렸던 배수아(44)씨. 2000년대 들어 그의 소설은 삶과 세계에 대한 해명, 작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성찰 등 관념적인 세계로 선회했다. 형식적으로는 서사의 중심축은 희미해지고 자유로운 몽상과 사유가 플롯을 지배하게 됐다.
<당나귀들> 이후 4년 만의 장편인 <북쪽 거실> (문학과 지성사 발행)에서 배씨는 "현실과 꿈의 경계란 무엇인가"라는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정통 서사 형식에 대한 작가의 반감은 독자들에게 익숙하지만, 그의 이번 소설도 하나의 스토리로 정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무의미한 일이기도하다. 북쪽> 당나귀들>
소설의 중심인물은 신문사에 다니다가 그만두고 1년 동안 세계여행을 한 후 직업 없이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어설프고 고독한' 사내 희태. 희태를 중심으로 몇 명의 여성들이 동심원을 그리고 있다.
매력적인 목소리로 오디오북 성우를 하다가 수용소에 들어가 수용소 내 라디오방송국에 일하는 희태의 애인 수니, 지방의 실버타운에서 노인들에게 오디오북을 들려주는 일을 하다가 수니의 목소리에 반해 수니를 만나기 위해 무작정 상경한 순이, 희태의 또다른 애인으로 극작가 지망생인 린이 그 여인들이다.
소설은 희태의 내적 독백에 여인들이 희태에게 들려주는 목소리가 불쑥불쑥 침입하면서 전개된다.
인물들의 다중 정체성, 다성성은 이 소설의 특징(소설 2장의 제목은 '목소리의 콜라주'이다)이다. '개인과 개인이 갖는 이름의 변별성은 아무런 의미란 없다'며 알파벳으로 작중인물의 이름을 명명하던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작가는 이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의 관계와 정체성을 모호하게 설정했다. 과연 순이가 순이인지 수니가 수니인지도 명확히 구별되지 않는다.
'소설을 통해 꿈의 세계, 인간 무의식의 목소리를 들려주겠다'는 작가의 의도는 작품의 형식 면에서도 지원받는다. '남자는 언젠가 여죄수가 비행기를 타고 통과한 구름의 벽', '원고의 어느 부분에서 늙은 동굴처럼 웅얼거렸고' 따위의 기괴한 비유들은 소설의 몽환성을 강화한다.
작가는 2002년부터 독일과 한국을 오가면서 번역작업과 소설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작가로 하여금 세계언어로 문학하기에 대한 고민, 한국어의 불완전성에 대한 예민한 사유를 가능하게 했고, 한국어의 한계를 묻는 실험을 추동하고 있다.
'일정한 톤의 중얼거림, 속삭임, 흐느낌, 목구멍을 웅얼대는 소리, 딸꾹질로 이루어진 말(들), 변신하는 소리, 변신하는 소리…' 따위의 나열, '피부가 와삭거리며 요동치고 땀구멍이 꿈틀거리며 벌레들이 온몸을 기어다니는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들린다'는 등의 이미지가 강조되는 문장들의 출몰은 이런 배씨의 실험이 계속될 것이라는 암시다.
이 소설의 과감한 실험성은 재미의 요소들이 거세된 대신 진지함의 부피는 늘어나고 있다는 배수아 소설에 관한 저간의 평가가 정당한 것인지 하는 논란 역시 촉발시킬 것 같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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