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비핵화와 다자회담 복귀' 발언에 대한 미 행정부의 반응은 한마디로 '신중' 혹은 '경계'이다.
김 위원장의 언급이 있은 지 이틀이 지나도록 미 국무부는 구체적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언론과 전문가들도 "두고 봐야 한다"는 관망세가 주조다. 이언 켈리 국무부 대변인은 "관련 보도는 봤다.
중국에 물어보라"는 일견 냉담한 논평을 내기도 했다.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일본 방문 중에 다소 긍정적 평가를 하면서도"김 위원장의 발언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않은 상태"라고 선을 그었다.
김 위원장의 다자회담 참여시사는 교착국면을 깰 수 있는 중요한 진전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미국이 신중 기조를 유지하는 것은'학습효과' 때문이다. 북한은 도발과 협상을 되풀이한 전력이 있고, 미국을 비롯한 관련국들은 북한에 휘둘리다 돈과 시간만 버린 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
2005년 7월, 2007년 1월에도 북한은 북미 양자회담을 거쳐 6자회담에 복귀했다. 2차 핵실험 등에 이은 6자회담 사망선고'뒤 나온 김 위원장의 대화 복귀 발언도 이런 과거의 패턴과 다를 게 없다. 미 행정부의 자세는 비핵화의 실질적 내용 진전이 없는 한 새로운 판단을 유보, 이 같은 악순환을 깨겠다는 것이다.
자연히 워싱턴 정가에는 북한에 대해'잘못된 낙관주의(false optimism)'를 경계하는 시각이 팽배하다. 냉전 때 소련에 대한 미 입장은 '신뢰하되 검증하라(Trust and Verify)'는 것이었다. 이를 빗대 존 케리 상원 외교위원장은 북한에 대해 '불신하되 검증하라(Mistrust and Verify)'며 수위를 높이기도 했다.'우선 불신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도"북한은 위기 조성 이후 몇 달 또는 몇 년 뒤 위기를 해소하면서 이득을 챙겨왔다"며 "김 위원장의 발언은 이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앞으로 있을 북미 양자대화의 연속성 여부 판단에는 김 위원장의 '말'이 아니라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대북제재 유지 전망도 비슷한 맥락이다. 2006년 1차 핵실험에 따른 유엔 결의 1718호가 북한의 회담 복귀 의사 표명만으로 채택 3주만에 껍데기로 돌변한 사례가 반면교사다.
다음주 뉴욕 유엔총회에선 북미 양국의 접촉 가능성이 있는데 여기서 북미간에는 치열한 기싸움이 오갈 것으로 예상된다.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방북 일정도 주요 의제다.
워싱턴=황유석 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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