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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여성시대와 함께하는 우리 이웃 이야기] "아빠 이상형은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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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여성시대와 함께하는 우리 이웃 이야기] "아빠 이상형은 누구야?"

입력
2009.09.21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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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맛있게 먹고 가족과 함께 TV를 보고 있는데 8살 먹은 큰 딸 녀석이 뜬금없이 "아빠 이상형은 연예인 중 누구랑 비슷해?"라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저는 "왜 갑자기 아빠 이상형을 묻느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냥 궁금해서 그러니까 얘기해달라"며 졸랐습니다. 아마도 요즘 TV에서 보면 연예인들에게 이상형을 묻는 내용이 많다 보니 딸도 그것이 궁금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저는 와이프가 듣기를 바라며 "아빠의 이상형은 엄마지"라고 크게 얘기해주었고, 설거지를 하던 와이프는 그 얘기를 듣더니 놀란 듯 그릇을 놓쳐버리고 말더군요.

그러곤 와이프가 저에게 얘기하였습니다.

"뭐 당신 이상형이 나라고? 참 나 원 훤히 보이는 거짓부렁에 내가 웃음 참다가 코 나올 뻔 했네"라며 "애한테 거짓말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네요.

이렇게 가족과 이상형에 대한 얘기를 하다 보니 지난날 이상형에 대한 추억이 떠올라 펜을 들어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당시 저는 고등학교을 졸업하고 뜻한 바 있어 해군부사관으로 자원입대하였습니다. 뜻한 바라고 하니 무슨 거창한 뜻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 해군복이 너무나 입고 싶어서 입대하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면접 땐 바다가 나를 부르고, 바다에 청춘을 불사르고 싶다고 얘기했었죠. 저의 그런 거짓말이 면접관을 감동시켰던지 저는 무사히 시험에 합격하였고 해군에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힘든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첫 부임지를 명령 받았습니다. 그 곳은 바로 백령도였습니다. 백령도에 가기 위해선 서울을 거쳐 인천에서 백령도행 여객선을 타야 했습니다.

저는 태어나서 대구에서 그것도 집 반경 2㎞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촌놈이었습니다. 물론 서울 근처에도 가본적이 없었지요.

진해에서 야간 열차를 타고 서울로 향하였고. 전 저 나름대로 촌놈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가능한 사투리도 쓰지 않고 서울에 대해서도 시골영감 처음 구경가는 듯한 태도를 나타내지 않기 위해 맘 속으로 다짐하였습니다.

새벽 무렵 기차가 잠시 후 영등포역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나왔고, 저는 잠에서 깨어 비몽사몽 차창 밖을 보니 TV에서나 보던 63빌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저도 모르게 "와! 63빌딩이다"하며 탄성을 내질렀습니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저를 주시하였고, '에구 이 촌놈아 63빌딩 첨 보냐'하는 듯한 눈길이었습니다. 촌놈티 안 낼려고 다짐했건만 몸에 밴 촌티는 어쩔 수가 없었나 봅니다.

이윽고 영등포역에 도착하여 인천으로 가기 위해 전철역으로 향하였습니다. 물론 지하철도 처음 타보는 것 이었습니다.

지하철을 직접 타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설레었고, 아까와 같은 촌티를 내지 않기 위해 마치 여러 번 타본 듯이 자연스럽게 행동하였습니다. 지하철 승차권 사용법에 대해서도 사전에 교육 받아 잘 알고 있었구요.

암튼 그렇게 자연스런 행동과 함께 무사히 전철에 타고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다 놀라고 말았습니다. 뭣 때문에 놀랬냐구요?

지하철에 저의 이상형이 수도 없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앞서 얘기 드린 것처럼 저의 고향이 대구입니다. 대구 하면 사과, 그리고 사과를 많이 먹어 미인 많다고 하죠.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만의 이상형을 그리듯이, 저 또한 저만의 이상형을 상상하며 수많은 여인들을 보았지만 이상형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미인이 많다던 대구에서도 말이죠.

친구들은 "니 눈은 이마에 붙었냐 주제 파악 좀 해라"라며 분수에 맞지 않게 눈이 높은걸 놀렸지만, 전 이 세상을 다 뒤져서라도 언젠가는 이상형을 꼭 찾아낼 거라 다짐했었는데, 그렇게 찾기 어렵던 이상형의 여자를 세상을 다 뒤진 것도 아니고 단지 전철 안에서, 그것도 한 명도 아니고 수도 없이 많이 보게 됐으니 저는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눈에 띄는 모든 젊은 여성은 거의 다 저의 이상형이었습니다. 후에 안 것이지만 그것은 군에 입대함에 따른 여성을 보는 시력저하와 더불어 새로움에 대한 환상이었습니다. 늘 주위에서 보던 여인네들의 눈에 익은 패션이 아닌, 새로운 감각의 앞서 간 패션이다 보니 제 눈엔 대단하게 보였던 것 같았습니다.

암튼 저는 지하철 한 칸에서 이렇게 많은 저의 이상형을 보자 천국이 따로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나중엔 꼭 서울에서 살아야지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이상형(이상한 형?)을 만나, 알콩달콩 잘 살고 있답니다.

여성시대 모든 애청자들께 얘기하고 싶네요. 자신의 이상형을 찾느라 멀리서 사서 고생하지 마시고 주위를 다시 한 번 둘러 보세요.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이상형이 지금 옆에서 졸고 있거나, 차를 마시고 있을지도 모르니깐요.

경남 진해시 제황산동 전춘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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