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풍기 지음/푸르메 발행·373쪽·1만5,000원
"천자문의 첫 대목이 '天地玄黃'(천지현황) 아닙니까?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는데, 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안 가더란 말이오. 이해가 안 가는 글을 어찌 내가 외울 수 있었겠소?"
늦깎이 공부로 큰 학문을 이뤘다는 조선 선비 김정국이 만년에 토로한 고백. 조선 전기의 유학자 김안국(1478~1543)의 동생으로만 알려져 있는 김정국은 다들 우습게 아는 천자문의 저 첫 구에 막혀 성년이 다 되도록 까막눈이었다고 한다.
16세기 학자 최세진도 어떤 글에서 천자문의 문장과 고사는 좋지만 아동들이 글자만 익히는 바람에 그 효과가 떨어진다고 지적했고, 다산 정약용도 '천자평(千字評)'이라는 글에서 천자문이 초학 교재로는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 는 '연암집' '맹자' '서유기' '정감록' 등 조선 지식인들이 서가 한복판에 꽂아두거나 이불장 깊숙이 감춰두고 읽던 27권의 책을 택해, 각각에 얽힌 사연과 일화 그리고 거기 연루된 인물들의 사생활을 흥미롭게 전한다. 조선>
14세기 중국의 구우가 쓴 기담소설 '전등신화'는 연산군이 중국에 가는 사신에게 구해오라고 주문했을 정도의 화제작이었다고 한다. 당대의 지식사회도 열광했을 테고,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은 거기에 꽂혀 '금오신화'를 짓는다. 귀신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근원적 욕망과 풍속의 병폐를 꼬집는 두 소설을 당대 지식인들은 어떤 시각으로 읽었을까.
오래된 책은 내용과는 별개로, 책 자체의 운명을 통해 당대 사회사의 행간을 읽게 한다.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인 저자는 그런 옛 책들을 매개로 긴 시공 속에 이어져온 사유의 가닥들을 풍성하게 복원하고자 한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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