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이끄는 일본의 민주당 정권이 출범했다. 1955년 자민당이 결성된 이래 54년 만의 실질적 정권교체에 따라 일본 사회의 변화가 세계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내년 7월 참의원 선거 때까지 지켜봐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지만 대체로 긍정적 변화를 기대하는 관측이 많다.
이는 한일 양국관계 전망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무엇보다 하토야마 정권이 아시아 중시 외교노선을 천명하고, 동아시아 공동체 구축을 장기 정책으로 표명한 데서 힘을 받고 있다.
한일 협력관계 확대 기대
동아시아 공동체 구축을 위해서는 한일 간의 긴밀한 협력체제가 필수적이다. 경제대국 일본이 정치ㆍ경제 대국으로 떠오른 중국과 불가피하게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긴장된 협력'구도가 형성될 때, 갈등을 해소하고 협력을 부추기는 중간 역할을 한국이 할 수 있다. 하토야마 총리를 비롯한 일본 민주당 주요 인사들이 입을 모아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지 않을 것임을 밝히는 등 역사 문제에 대한 자세도 눈에 띈다.
하토야마 총리가 강한 의욕을 보인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의 실현을 위해서는 크게 보아 몇 가지 전제가 갖춰져야 한다. 첫째, 연간 250억 달러에 육박하는 대일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한층 기울여야 한다. 물론 대일 무역적자의 근본 원인은 일본에 대한 기술ㆍ부품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에 있지만, 이를 시장 원리에만 맡겨 두기에는 너무나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이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하토야마 정권의 의지가 필요하다.
둘째, 한일 간의 민간교류 내용을 개선해야 한다. 이미 양국 간에는 연간 450만 명 이상이 왕래하고 있다. 이런 인적 교류의 확대를 사회경제적 실질적 협력으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 중소기업 가운데는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고서도 인력과 자금난을 겪는 기업이 적지 않다. 이런 중소기업에 한국 젊은이들이 인턴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제공된다면, 양국 모두에 득이 된다. 마찬가지로 한국도 일본의 실버 세대가 마음 놓고 노후생활을 즐길 수 있는 제도와 조건을 만든다면 그들의 정착을 통해 양국 민간교류를 질적으로 더욱 성숙한 단계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셋째, 과거사 문제에 대한 진솔한 접근이 필요하다. 하토야마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지 않겠다고 거듭 밝혔다. 아시아를 중시하는 만큼 과거사 문제에서 한결 유연한 자세를 보일 것으로 기대되지만, 거기서 그칠 게 아니라 군대위안부나 역사교과서 문제에서도 전향적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독도 문제가 과거사 문제와 표리관계에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역사의 상처 돌보는 노력을
이명박 대통령이 제안한 아키히토 천황의 방한 문제도 전향적 검토가 필요하다. 다만 그의 방한이 곧 과거사 청산이라는 등식은 성립하기 어렵기 때문에 지나친 기대는 바람직하지 않다. 고대 일본 황실이 한반도와 관련이 있음을 직접 언급할 정도로 한국에 우호적인 아키히토 천황의 방한을 정치적 측면보다 역사문화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위해서는 신뢰의 회복이 전제돼야 한다. 그 첫걸음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다. 특히 한일 양국처럼 역사적 굴곡이 깊은 사이에는 무엇보다 상대방이 예민하게 여기는 상처를 덧나지 않게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하토야마 총리가 내건 '우애'구호는 이런 의미에서 커다란 기대를 모은다.
이강민 한양대 일본학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