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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일본의 관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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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일본의 관료

입력
2009.09.21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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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젊은 에세이스트 하야시 유스케(林雄介)가 쓴 <가스미가세키의 규칙, 관료의 이면> 이라는 책에 '덜 익은 관료 대사전'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가스미가세키는 도쿄(東京)의 중심인 지요다(千代田)구의 지명이다. 이곳에 일본의 중앙 관청들이 몰려 있어 '일본 관료'의 별칭처럼 쓴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 광화문이나 경기도 과천쯤 될까.

철야 마다 않는 일본 공무원들

일본 관료의 특징을 보여주는 용어들을 재미있게 정의한 이 사전에 '아침 귀가'라는 대목이 있다. '철야하고 아침 일찍 옷을 갈아 입기 위해 자택에 돌아가는 것. 정말 바쁜 때에는 관청에서 택시로 집에 돌아와 택시를 대기시킨 상태에서 샤워하고 옷을 갈아 입은 뒤 사무실로 되돌아가는 경우도 있음. 금요일 밤에 야근한 뒤 토요일 첫 전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침 귀가도 있음.'

일본의 관료제는 메이지(明治)유신으로 실업자가 된 사무라이(侍) 계급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관료는 계급제도가 사라져가는 근대 일본사회에서 중요한 출세의 수단이기도 했다. 직업도 늘어나고 사회적으로 성공할 기회도 다양해졌지만 그래도 50대 이상의 일본 사람들은 아직도 열심히 공부해 도쿄대에 합격한 뒤 공무원 되는 것을 큰 출세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선망의 대상이던 일본 관료들이 민주당 새 정권에서 하루아침에 '공적(公敵) 1호'가 되고 있다. 반세기 넘게 자민당 정권과 결탁해 이권정치의 견인차 역할을 했고 그 과정에서 행정 낭비를 일삼았다는 이유다. 새 장관들은 너나 없이 관료사회 개혁을 단단히 벼르는 모습이다.

민주당의 개혁은 이권정치를 만들어 내는 관료 주도 정책 결정의 시스템을 고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탈관료'라는 구호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하다 보니 관료는 부정부패의 원흉이 돼 준범죄자 취급 받는 느낌마저 든다. 전후의 폐허에서 경제대국을 일으켜 세우는 등 일본을 반석에 올려 놓은 관료들의 긍정적 면을 상기시키는 사람은 찾아 보기 힘들다.

이런 일본의 '관료 때리기' 과열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의외로 미국인 이었다. 미 국무부 커트 캠벨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는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새 일본 정권 주제 세미나에서 민주당이 '탈관료정치'를 표방하는 데 대해 "내 경험으로는 일본에서 함께 일을 한 일부 관료는 가장 우수한 프로였다"며 "그들이 적대시 당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정권을 잡은 사람들도 일본 관료들이 수십 년에 걸쳐 일본의 국익을 위해 큰 공헌을 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소개한 관료 사전은 '가족'을 이렇게 설명한다. '동거하는데도 불구하고 심야 연장근무가 많아 일주일에 한번 얼굴을 볼 수 있는 존재. 배우자 선택을 매우 신중하게 하지 않으면 이혼 당하기 십상. 휴대폰으로 꼬박꼬박 연락하거나 자주 선물하는 것을 잊지 않고 책상 위에 가족 사진을 올려 두는 애처가들이 많음.'

관료 적대시하는 개혁은 안돼

일본의 국가 정책이 관료에 집중된 건 사실이지만 '일본 최고의 싱크탱크'라는 관료가 추구한 것은 그 권한의 사적인 남용이라기보다 가족까지 버려가며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었다. 한국의 행정고시에 해당하는 국가공무원 채용시험을 거쳐 임용된 일본의 '캐리어 관료'는 1만5,000명 정도라고 한다. 민주당의 관료 개혁은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국가의 공복(公僕)이라는 선의로 충만한 관료들의 사기를 꺾지 않기 바란다.

김범수 도쿄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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