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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건축, 권력과 욕망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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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건축, 권력과 욕망을 말하다'

입력
2009.09.21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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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영 지음/궁리 발행·272쪽·1만2,000원

서울 도심 청계천변에 31빌딩이 들어선 것은 1971년이다. 전쟁의 아픔을 딛고 본격적인 산업화의 길로 접어들던 그 시기에 31빌딩은 서울의 상징이었다. 서울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앞둔 1985년에는 31빌딩 두 배 높이의 63빌딩이 세워졌다. 올림픽 개최가 선진국 진입으로 보였듯, 초고층 63빌딩의 건설은 국력과 자존심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높은 것은 무엇이든 눈에 띈다. 높은 산, 키 큰 나무, 우뚝 솟은 바위 등은 신비와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인간은 높이 짓기를 시도했고 지금도 많은 국가에서 고층 건물은 국력의 과시로 받아들여진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 <우리가 살아온 집 우리가 살아갈> 등의 책을 낸 서윤영(41 )씨는 건축을 인간의 삶과 생각을 포함한 복합적인 존재로 본다. 건축은 어떤 식으로든 메시지를 담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가 새로 낸 책 <건축, 권력과 욕망을 말하다> 는 인간의 권력과 욕망을 매개로 건축의 메시지를 찾는 작업이다.

높이와 함께 건축의 권력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넓이다. 진시황릉, 타지마할, 그리스의 신전 등은 넓이에서 대중을 압도한다. 여기에서 넓다는 것이 물리적 넓이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비행기 퍼스트클래스 좌석이 비즈니스, 이코노미 좌석보다 넓고, 회사 사장의 책상이 직원의 책상보다 넓은 것은 단순한 면적의 차이가 아니다.

한국 자본주의에서 건축 권력의 예는 대기업 사옥에서도 발견된다. 이들 사옥은 높고 넓을 뿐 아니라 물질적 여유를 갖고 있다. 1층 로비의 넓은 공간에 별다른 시설을 두지 않는 것인데, 이는 그 정도의 임대수익은 포기할 수 있다는 여유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다.

종교건축 역시 권력을 드러내는 건축이다. 현세의 권력이 아니라 신이라는 지고한 권력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종교에서 신은 늘 밝은 빛으로 표현되며 종교건축은 일출, 일몰 등에 맞춰 빛을 극적으로 보여주는데 주력한다.

학교, 병원, 감옥은 감시와 훈육의 건축이다. 소수의 관리자가 다수의 피관리자를 교육, 치료, 교도하는 이들 건물에는 시각적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을 지켜보지만 그 사람은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어렵거나, 커뮤니케이션이 대등하지 않게 이뤄지는 곳이다.

백화점은 욕망의 상징 건축으로 소개된다. 1850년 프랑스 파리에서 문을 연 최초의 근대적 백화점 '봉 마르셰'는 구조가 미로와 같아서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가기 어려웠다. 고객들은 건물 안을 빙빙 돌면서 욕망의 노예가 되고, 생각하지 않았던 물건을 구입하게 된다. 이 백화점은 처음부터 중산층을 겨냥했는데 그 방법은 상류층의 소비행태를 따르고자 한 중산층의 계급 상승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국내외 다양한 건축 사례를 들며 건축의 메시지가 항상 정직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왜곡, 조작, 과장을 통해 권력을 강화하고 욕망을 부추기며 허위의식을 심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 메시지를 받아들일 때가 많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비판적인 건축 읽기라고 볼 수 있다.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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