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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어가는 가을 육체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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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어가는 가을 육체의 향연

입력
2009.09.21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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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21세기 공연예술의 화두다. 사이버 시대, 육체는 인간이 실제적으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영역이다. 몸의 현존을 소재로 한 연극과 무용이 나란히 상연된다. 그러나 접근법은 판이하다

"맷집 키운다고 배때기 수천대식 맞으면서 너 울었지? 너 인마, 버팅으로 이마 터져서 시뻘건 피가 눈으로 콸콸콸 쏟아져 들어갈 때 너 기분 어땠어? 피 오줌 질질 쌀 때, 기억 어땠어?"변두리 작은 체육관에서 관장이 내지르는 소리는 육체의 물질성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한국 복싱의 전성기였던 1980년대, 최고의 선수로 각광받던 그의 앞에 권투를 배워 삶의 활력을 되찾으려는 6명의 젊은이들이 왔다.

극단 모시는사람들의 '이기동 체육관'은 권투를 통해 삶의 의미를 일깨워 간다는 점에서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버전업이라 할 만하다. 물론 유혈 낭자한 영화만큼은 아니지만, 연극에 출연하는 배우 8명도 지난 6월말부터 시작한 지옥 트레이닝에 허덕였다.

첫 달은 줄넘기와 스텝 연습, 이후는 스파링 등 역할에 따라 맞춤 훈련에 들어갔다. 매일 4시간은 투여한 갑작스런 강훈에 근육통, 몸살은 기본이었다. 덕택에 무대는 생생한 연기로 채워진다.

더욱이 세 사람의 여성까지 있다. 뚱뚱해서 시집 못 간 아가씨, 웬만한 남자보다 더 강한 성격의 아가씨, 어디로 튈 줄 모르는 여고생. 사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이웃이다.

생생한 언어 등 살아있는 캐릭터는 이 무대의 기원이 작·연출자 손효원(39)씨가 다니던 체육관이라는 데서 비롯한다.

손씨는 "평범한 이웃들이 권투를 통해 좌절을 극복해 가는 모습을 통해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며 "가족 파괴를 치유하는 훌륭한 소재로서 스포츠 이야기는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10월 9일~12월 26일, 소극장 모시는사람들. 화~금 오후 8시, 토 오후 4시·7시, 일 오후 3시. (070)7737-6488

여기에 비한다면 노르웨이의 무용단 요 스트롬그렌 컴퍼니의 '축구 예찬'의 마초이즘은 노골적이다. 4명의 건장한 무용수들이 무대 위에서 펼치는 각양 각색의 동작은 아름다우면서도 폭력적이다.

발로 차고, 서로 부대끼고, 넘어지는 등 사실적 연기 덕에 관객은 마치 축구공이 무대에 실재하는 듯 착각한다. 1998년 초연된 이 작품은 2006년 에딘버러 페스티벌에 초청된 것을 시작으로 각처에서 부름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 성가가 짐작된다.

갖가지 연습 장면은 물론 갑작스런 생리적 문제를 해결하느라 쩔쩔매는 모습, 게임을 마친 뒤 밀려오는 피로감, 돌아서서 나체로 샤워하는 모습 등 축구의 모든 것이 무용으로 표현된다.

이 무대의 전체적인 색체는 코믹하지만, 그것은 현대 예술이 동시대와 소통하기 위한 효과적 통로이기도 하다. 11월 20~21일, 세종문화회관 M 시어터. (02)3673-2561

두 무대가 몸을 빌어 이 시대 남성성과 육체의 의미를 탐색한다면, 10월 7~16일 남산예술센터에서는 격렬한 몸짓을 매개로 억압된 몸과 그 속에 내재된 욕망을 그리는 김윤진무용단의 '다녀오세요, 구두가 말했습니다!'가 공연된다.

연출·안무가 김윤진씨는 "몸은 갈수록 비인간화돼가는 현대 문명에 대한 반항이자, 아직 언어화되지 못한 것을 효과적으로 끄집어 내는 매개"라며 "몸은 곧 인간의 욕망이자 정체성"이라고 말했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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