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멧돼지가 서울 도심 주택가에 잇따라 출몰하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최근 4,5년 새 북한산, 아차산 등지에서 멧돼지 개체수가 늘고 있는 데다, 멧돼지의 활동량이 늘고 성질이 예민해지는 겨울 번식기가 다가오면서 멧돼지의 도심 진입을 막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주택가에도 무람없이 출현
19일 오전 7시 서울 종로구 구기동 주택가엔 몸무게 200㎏짜리 멧돼지가 출현해 출근이나 아침 운동하러 나선 주민 수십 명이 급히 대피하는 소동을 빚었다. 인가 마당까지 넘나들며 경찰, 소방대원 20여 명과 골목길 추격전을 벌이던 멧돼지는 총탄 6발을 맞고 2시간 만에 사살됐다.
이 과정에서 소방대원 한 명이 멧돼지에 팔을 물려 부상했다. SUV 차량을 운전하다 멧돼지와 충돌한 김모(47ㆍ여)씨는 "큰 소리가 나더니 사람보다 큰 멧돼지가 저만치 뛰어가고 범퍼가 부서져 길가에 나뒹굴고 있었다"고 말했다.
멧돼지의 출몰은 서울 지역에서 2004년 이후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은 10여건이지만 전문가들은 한 해에만 수십 건에 이른다고 말한다.
지난달 21일에도 주택가와 인접한 성북구 정릉공원에 멧돼지가 나타나 공원을 찾은 100여명이 긴급 대피했다. 2005년 10월 광진구 광장동에 출현한 멧돼지는 사람을 공격해 2명이 부상하기도 했다.
■ 서울 일대는 멧돼지 천국
깊은 산에 주로 서식하는 멧돼지의 도심 출몰이 잦아진 것은 수도권 일대에 멧돼지 수가 늘었기 때문. 산림 녹화로 주식인 도토리가 풍부해진 점, 국립공원ㆍ군사보호지역이 많아 수렵장 개설이 어려운 점 등이 그 이유로 꼽힌다. 최근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멧돼지 서식밀도는 100㏊당 7.5마리로, 전국 평균(3.7마리)의 2배 이상이다.
특히 북한산 송추지구, 아차산 서울지역 등은 서식밀도가 10마리에 이른다.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 황보연 생태담당자는 "2000년대 들어 경기 양주 지역에서 영역 다툼에 밀린 멧돼지들이 북한산 능선을 타고 서울 쪽으로 서식처를 넓힌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멧돼지 출현은 주로 9~12월에 집중된다. 겨울 번식기를 앞두고 짝짓기 경쟁에서 밀린 수컷들이 다른 영역을 찾아 이동하기 때문인데, 멧돼지가 산자락을 타고 내려오다 보면 자연스레 도심에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렇다 보니 북한산과 아차산을 등지고 있는 종로구, 광진구, 강동구 등에 '달갑잖은 방문'이 집중되고 있다.
■ 상시 대응 체제 구축해야
상황이 이런데도 서울시는 "자치구와 소방 당국 소관"이라며 멧돼지 출현 신고 건수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2006년 환경부가 '멧돼지 긴급 대응 시스템'을 구축한다며 광역시에 내린 지침은 전혀 이행되지 않고 있다.
이 지침엔 광역시가 119구조대, 민간단체 등과 긴밀히 연계해 전문구조단을 운영하고 위험 지역에 대응 매뉴얼을 배포하도록 돼있다. 시청 관계자는 "요즘은 멧돼지가 거의 출현하지 않아 환경부 지침은 거의 사문화된 상태"라고 말했다.
문태국 대한수렵관리협회 본부장은 "멧돼지 습성을 잘아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구조단이 유사시 경찰ㆍ소방구조대와 함께 긴급 출동할 수 있는 체제를 상시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보연씨는 "도심 확장으로 인해 단절된 생태축을 복원해 멧돼지 등 야생동물들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주는 것이 해법"이라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박민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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