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석재 지음/휴머니스트 발행·전 2권
흔하기 때문에 하찮게 혹은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많다. 높낮이가 다른 공간을 이어주는 계단도 그 중 하나가 아닐까. 곰곰 생각해보면 계단은 인류 역사와 함께 했다.
중력의 힘을 뚫고 더 높은 곳으로 가고자 하는 인간의 수직 욕망을 계단은 자극도 하고 실현도 해주었다. 계단을 결코 소홀하게 대할 수 없는 까닭이다.
임석재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의 <계단, 문명을 오르다> 는 계단의 역사, 계단의 의미 등을 서양 문명사의 관점으로 풀어 쓴 흥미로운 인문서다. 계단,>
한국에 계단 전문가가 거의 없고 계단에 대한 책도 없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은 이례적이면서도 돋보인다. 저자는 계단을 각 시대의 사회문화적 의미가 건축을 통해 집약적으로 저축된 보물창고로 보고 있으니, 그가 계단에 부여하는 의미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바벨탑, 피라미드 등이 보여주듯 고대의 계단은 하늘에 닿겠다는 초월적 의미와 정치권력의 과시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당시 사람들은 가장 높은 곳에 신이 살기 때문에 제사 역시 그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내야 했다.
신보다 인간을 우선시한 그리스 로마 시대에 계단은 실용성을 보강하게 되며, 전쟁의 영향을 받은 중세의 계단은 성채의 방어를 위해 실내에 들어오고 나선형을 띤다. 르네상스에 이르면 계단은 건축가의 작품으로 인정받기 시작한다.
바로크 시대는 서양 계단의 전성기다. 화려하고 다양한 형식에 예술적, 상징적 의미가 더해졌다. 군주들은 화려한 치장 등을 통해 계단에 정치적 권위를 입혔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의 계단은 화려함을 잃은 대신 공원 계단 등 공공 영역으로 나아갔다.
19세기에는 대형 공간이 등장하고 계단은 거기에 맞춰 기능과 효율 중심으로 단순화한다. 계단은 이후 엘리베이터라는 기계식 수직 이동 수단의 등장으로 결정타를 맞고 쇠퇴기에 접어든다.
저자는 계단이 사람, 정보, 권력, 거래가 오가는 교류의 공간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문명의 구성원이 계단을 통해 어떻게 소통, 교류했는지를 책에서 밝히고 싶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 저자는 이 책이 건축적이고 인문사회적인 의미를 담아 계단을 분석한 세계 최초의 책이라고 자부한다. 저자도 모르는 비슷한 책이 혹시 있을지 모르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계단이라는 소홀하기 쉬운 주제를 이렇게 진지하게 접근한 것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 1권 296쪽(1만6,000원), 2권 354쪽(1만7,000원).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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