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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 '85호 크레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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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 '85호 크레인…'전

입력
2009.09.18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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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5월 29일 새벽, 한 여성이 평양 을밀대 지붕 위에 올라가 농성을 벌인다. 평원고무공장 직공 강주룡(당시 30세)씨다. 고무 먼지 속 하루 15시간 노동, 남자 감독관의 갖은 횡포와 희롱에 시달리며 급여는 일본인 남성 노동자의 1/4 수준이었다고 한다.

일본 독점자본은 세계공황(1929년)의 짐을 노동자 임금 삭감으로 만회하려 했고, 그 첫 사업장이 평원고무공장이었다.

대다수가 여성이었던 노동자 49명은 파업과 단식농성으로 맞섰고, 강주룡은 '고공 농성'을 택했다. 한국노동운동 역사상 최초의 고공 농성 1인 시위였다." (<박준성의 노동자 역사 이야기> 에서)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 있는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평화공간'이 지난 10일부터 기획전 '85호 크레인_어느 망루의 역사'를 열고 있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맨 처음 만나게 되는 작품이 배인석(41)씨의 '나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이다.

강주룡의 농성 장면을 찍은 낡은 흑백사진과 당시 그녀가 입었던 저고리와 고무신, 머리카락 따위가 '을밀대(乙密臺)' 현판과 함께 전시돼 있다.

그 곁에는 신문 스크랩 패널이 걸려 있는데 기사의 요지는 '우연히 저 유품들을 구해 전시하게 됐다'는 내용이다. 관람객 열에 아홉은 그렇게 믿는다.

신문 스크랩을 보면 언론이 그렇게 보도한 걸로 돼 있고, 유품도 사진 속 형상 그대로 정교하게 '위조'돼 전시돼있기 때문이다. 다만 유품 곁에 검정 표지에 묶여 있는 3,000쪽 분량의 백지 문서파일을 들춰본 이라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될 것이다.

이 백지 파일은 용산 참사를 수사하고도 검찰이 공개하지 않고 있는 기록의 패러디다. 전시된 것들 중 진짜는 강주룡이 고공 시위를 하고 있는 옛 사진 한 장뿐이다.

그제서야 관람객은 배씨의 작품 전체가 정교한 반어이자 세상을 향한 질문임을 알게 된다. 배씨는 "거짓을 통해 강주룡의 진실을, 권력의 거짓을 통해 세상의 진실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획전에는 모두 10명의 작가가 참여, 타워크레인과 조선소 굴뚝 등 고공농성의 공간으로 활용돼 온 '망루'의 의미를 살피는 회화, 조각, 사진, 영상, 설치작품을 선뵌다. 전시는 내달 17일까지.

전시 주최자인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이해동(71ㆍ목사) 이사장은 "작품 속 망루는 자신들의 생존권을 주장하게 위해 마지막으로 선택한 투쟁의 공간으로, 높은 자리에 있지만 역설적으로 지극히 낮은 곳"이라고 말했다.

인권운동가이기도 한 그의 지론을 따르자면 작품들 속 망루는 교회가 서 있어야 할 바로 그 자리다. 그는 "흉물처럼 높이 서 있는 교회의 종루와 십자가 첨탑은 저 망루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교회가 낮은 곳에서 인권·생존권을 위해 싸우는 이들의 공간이 되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말했다.

그의 해석처럼, 이번 전시는 세속화한 일부 교회권력에 대한 신랄한 풍자로도 이해될 수 있다. 그는 "십자가는 형틀이고 고난과 수치의 상징인데, 그게 교회의 액세서리처럼 활용되고 이해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말도 덧붙였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사진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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