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엔 백자, 고려엔 청자가 있다면 신라엔 '민낯의 그릇' 토기가 있다.
경북 경주시의 많은 고분에서 발굴된 신라 토기들을 재현한 것은 40여년 전이다. 경주시 하동 경주민속공예촌에 자리한 신라요(新羅窯)의 명장 류효웅(68)씨가 처음으로 신라 토기의 제작 비법을 터득했다. 지금 드라마 '선덕여왕'에 나오는 화려한 디자인의 등잔 술잔 등 토기 수백 점도 신라요의 작품들이다.
자기가 장석이나 규석 등을 재와 섞어 만든 유약을 입힌 그릇이라면 옹기는 잿물을 발라 구워 표면을 매끄럽게 한 항아리다. 반면 토기는 아무런 유약을 바르지 않고 구워 낸다. 자기가 진한 화장을 한 얼굴이라면, 옹기는 메이크업 베이스 같은 기본 화장만 한 것이고, 토기는 아무런 화장을 하지 않은 맨 얼굴이다.
그래서 그릇의 숨쉬는 능력으로만 놓고 보면 자기나 옹기보다도 토기의 기능이 훨씬 크다. 자기나 옹기가 잔 숨을 들이 쉰다면 토기는 심호흡을 하는 셈이랄까.
아무런 유약을 바르지 않았지만 토기의 겉면은 반질반질한 느낌을 준다. 이에 대해 류씨는 "1,300도 이상에 놓고 구우면 흙이 다 녹는다. 흙이 녹을 때 표면에 유리 성분이 번져 나오고, 가마 속 재가 함께 녹으면서 자연스레 막을 형성한다"고 설명했다. 류씨가 온갖 시행착오를 거쳐 재현해 낸 신라 토기의 비밀이다.
경기 여주군이나 광주분원 등에서 나오는 자기들 상당수는 가스 가마나 기름 가마로 구워 낸다. 불 조절이 쉽고 단기간에 파손품을 최소한으로 줄이며 구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라 토기는 반드시 장작으로 장시간 때야 하는 전통 가마로만 구워야 한다. 신라 토기의 색은 전통 가마 속 연기와 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동 물레가 아닌 전통 방식의 발 물레로 힘들게 토기를 빚어선 가마에 앉힌다. 가마는 4박 5일간 쉬지 않고 불을 때야 한다. 불 조절이 관건이다. 가마의 구멍 속 불을 보고 가마 속 온도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가마 불지피는 날이면 도공은 쉽게 눈을 붙일 수 없다. 불을 다 땐 5일째, 가마의 모든 구멍을 꽉 막은 뒤 또 5일을 기다린다.
가마 속 재와 연기를 토기가 흠뻑 빨아들이는 시간이다. 이후 가마의 재를 끄집어 낸 뒤 다시 구멍을 막고는 또 10일을 가마가 온전히 식기를 기다려 토기를 완성시킨다. 가마에 불 붙은 지 20일은 돼야 작품이 되는 것이다. 신라 토기는 고된 땀과 오랜 기다림이 응축된 작품이다.
류씨는 "40년을 해도 어려운 게 이 일"이라며 "당시 도인들이 어떤 마음으로 토기를 구웠는지, 그 마음을 얻어 내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류씨의 동생도 형님과 함께 신라 토기의 맥을 잇고 있다. 경주시 동방동에 있는 한국토기가 진용(57)씨가 토기를 빚고 가마에 불을 붙이는 곳이다.
형의 작업을 돕기 시작하다 흙일에 접어든 진용씨의 경력도 어언 37년에 이르렀다. 우직함으로 버텨 온 세월이다. 그는 "1,000년 전의 토기지만 그 모양과 문양, 쓰임새는 지금 봐도 매력적이고 독특하다"며 뚜껑을 덮는 접시, 받침대를 달고 있는 둥근 항아리, 왕관의 옥구슬 같은 장식을 매단 술잔이나 등잔 등을 내보였다.
그는 "신라 토기를 찾는 사람들이 예전엔 얼마나 출토품과 닮았는가를 따지더니 이제는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을 많이 좋아한다"고 했다.
그의 집안에 있는 대부분의 그릇이나 화분, 물통 등은 모두 토기로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번지르르한 자기가 좋아 보이지만 일단 토기를 사용하다 보면 흙의 질감이 살아 있는 그 맛에 금세 깊은 정이 들게 된다"고 했다.
진용씨는 가업을 잇겠다는 든든한 아들이 있다. 경주시에서 신라 토기를 하는 장인 중 가장 젊은 국현(33)씨다. 그는 요즘 신라 토기 제작 비법으로 맑은 차를 담는 다기를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땅 속에서 1,000년 이상을 묻혀 있던 '생얼'의 신라 토기가 이제 새로운 변주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경주= 글·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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