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통영시 40여 곳 유인도 가운데 처음으로 욕지도에 공중목욕탕이 생긴다. 통영시는 21일 통영시 욕지면 동항리에서 진의장 시장과 마을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중목욕탕 개소식을 갖는다. 통영항에서 뱃길로 32㎞ 떨어진 욕지도는 1,200여 가구 2,40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엄연한 면(面) 소재지이지만 공중목욕탕이 없어 주민들의 불편이 컸다." 다소 생뚱맞은 뉴스였지만 내가 태어나 자란 섬이기에 눈길이 갔다. 욕지도는 이제 낯설고 외딴 섬이 아니다. '제대로 목욕도 못하고 살았구먼'하는 눈총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반가운 소식이다.
▦제주도에 돌-바람-여자의 '3다(多)'가 있었다면, 욕지도엔 '3무(無)'가 있었다. 전깃불-자동차-목욕탕이다. 전기는 십수년 전부터 해저 케이블로 끌어다 쓰고 있으며, 일주도로가 90% 가까이 완성돼 이미 카페리호까지 운항하고 있다. 이제 목욕탕이 생긴다니 '3무'의 오명은 없어질 게다. 어릴 적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이면 산 너머 해군부대에서 주민들을 초청해 목욕을 시켜 주었다. 남녀를 갈라 이틀 동안 행사가 열렸다. 아버지 손에 끌려가면서 "하루 종일 물에서 놀았는데 목욕 한 번 하자고 이 산길을 가야 하나"며 투덜댔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명절에나 목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주민이 몇 백명 수준이었던 그야말로 옛날 얘기다. 거의 하루 종일 해수목욕탕(?) 언저리에서 지냈으니 굳이 섬에서의 목욕이란 몸에 붙은 소금기를 닦아내는 정도면 족하다고 여겼을 시절이었다. 외딴 섬치고는 높은 천황산(해발 384m)이 버티고 있어 의외로 민물(담수)이 풍부한 곳이 욕지도다. 1950년대에 우장춘 박사가 씨 없는 수박 재배 등 원예시험을 했고, 70년대부터 제주도 외에서 유일하게 감귤을 재배했던 것도 그 덕분이다. 그런 섬에 공중목욕탕이 이제야 생겼고, 나머지 섬엔 여전히 없다니 의외다.
▦해수와 해풍으로 옮겨 붙은 염분은 신속히 닦아내야 건강에도 좋고 기분도 상쾌하다. 이번에 통영시가 지자체 예산으로 한증실까지 갖춘 공중목욕탕을 지어주고 관리를 주민자치에 맡긴 것은 참 잘한 일이다. 현지 주민에겐 3,000원, 외부인에겐 5,000원을 받는 요금체계도 합리적이다. 섬이란 사방이 물로 둘러싸여 있지만 가장 부족한 것 또한 물이다. 그나마 욕지도는 민물이 적지 않아 요즘은 집집마다 대부분 목욕시설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전국의 수많은 섬마을에 이번에 통영시가 만든 형태의 '시립 공중목욕탕'이 계속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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