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연말이 다가오면 구세군의 종소리와 함께 산타가 나타나 불우이웃돕기 운동이 전개된다. 그런데 가을로 채 접어들지도 않았는데 벌써 불우이웃돕기 운동을 시작하려 한다. 그것도 한때 당당한 위세를 자랑하던 신문업계를 돕자는 명분으로 말이다. 신문산업이 언제부터 불우이웃이 됐는지, 세상의 흥망성쇠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2005년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던 'EPIC 2014'라는 8분짜리 동영상이 있었다. 실제 제작자가 구글로, 2005년부터 10년간에 걸쳐 어떻게 정보의 생산·유통체계가 바뀌는지에 대해 그럴싸하게 설명하고 있다.
EPIC은 구글과 아마존이 합친 '구글존'이라는 가상의 회사가 만든 개인용 정보유통시스템의 약자다. 하지만 단어 epic의 원래 뜻으로 풀면 기념비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2014년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동영상에서 2014년은 뉴욕타임스가 구글존에 의해 인터넷으로 유통되는 뉴스서비스에 처절하게 대항하다 결국 견디다 못해 문을 닫고 양로원 노인들의 뉴스레터 신세로 전락하는 해이기 때문이다. 물론 구글의 바람이 반영된 황당한 예측이지만 앞으로 신문산업에 닥칠 암담한 미래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신문산업이 쇠락의 길로 들어선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마치 거대한 파도가 일엽편주 '신문'호를 집어삼킬 듯 들이닥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주변 기상환경의 악화에 따른 파도라면 아무리 사나워도 유능한 선장은 헤쳐나갈 수 있다. 하지만 조류 자체가 방향을 바꾼 경우에는 제 아무리 뛰어난 선장이라도 배를 전진시킬 수 없다.
현재 신문산업이 직면하고 있는 경영위기의 정체는 이같이 주변을 둘러싼 경영환경, 즉 해류의 흐름 자체가 바뀐 것이다. 자신의 힘만으로는 벗어나기가 거의 절망적이다. 따라서 주변에서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고, 구체적으로는 케이블 종합편성채널(종편)이 불우이웃을 돕는 산타의 보따리 중 하나다.
종편이 신문사의 경영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돈 보따리가 될지, 아니면 애물단지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선거판이 돈판이던 시대에, 집안이 단번에 망하려면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면 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었다.
최근에는 이 말이, 신문이 빨리 망하려면 종편을 하면 된다는 것으로 비유된다고 한다. 안하고 차라리 천천히 망하는 게 낫다는 자조적인 얘기도 들린다.
그런데 종편이 위기에 빠진 신문사를 구해줄 수 있는 산타의 보따리라면 상대적으로 형편이 좀 더 나은 일부 신문사에게만 주는 것은 형평의 문제가 있다.
종편 보따리는 크기가 너무 크기 때문에 산타가 이것을 메고 통과할 수 있게끔 굴뚝의 넓이를 크게 새로 만들어야 한다. 형편이 어려워 사나흘에나 한번 연기가 겨우 피어오르는 흥부 집 아궁이 굴뚝에서는 어림도 없는 소리다.
불우이웃을 도우려면 원래 형편이 가장 어려운 곳부터 도와야 순리다. 돈이 있거나 아니면 주변에서 꿔올 능력이나마 있어 굴뚝을 넓힐 수 있는, 상대적으로 '덜' 불우한 이웃들만 돕는 산타는 정의롭지 못하다. 직설적으로 더 불쌍한 저 많은 불우이웃은 어쩌란 말인가? 억하심정으로 "우리는 천천히 망할 테니 당신들은 빨리 망해라"는 저주만 퍼붓고 있어야 하는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