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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밀전병에 싸서 요구르트에 콕… 나, 떡볶이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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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밀전병에 싸서 요구르트에 콕… 나, 떡볶이 맞아?

입력
2009.09.18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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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앞치마를 두른 아주머니가 네모난 철판에 떡과 고추장 양념을 쏟아 넣는다. 물을 부은 다음 빨간 물이 든 주걱으로 이리저리 뒤섞는다. 걸쭉해질 때까지 끓이다 적당히 국물이 졸아들면 비닐을 씌운 플라스틱 접시에 담아 내민다.

우리네는 떡볶이를 보통 이렇게 먹었다. 아주머니가 유난히 무뚝뚝해도, 철판에 먼지가 잔뜩 앉았을 것 같아도, 길거리 한복판에 서서 먹어도 그러려니 했다. 왜냐하면, 떡볶이니까.

그랬던 떡볶이가, 요즘 많이 변했다. 고추장 대신 스파게티 소스가 들어가고, 오뎅 국물 대신 과일 음료를 마시는가 하면, 포장마차가 아니라 레스토랑에서 먹는다. 떡볶이의 '변신'이 새롭고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조금 아쉽기도 하다.

● 한국식 카페의 사이드메뉴로

카페에 가면 사람들은 보통 음료를 마시면서 조각케이크 베이글 와플 등 사이드 메뉴를 함께 먹는다. 그런데 가만 보면 사이드 메뉴가 모두 서양 음식이다. 사실 커피라고 꼭 서양 음식이랑만 어울린다는 법도 없는데 말이다.

서울 중구 필동 충무로역 근처에 2007년 10월 문을 연 카페 딸깍발이는 이런 고정관념을 깼다. 이 집에선 사이드 메뉴로 가장 '한국적인' 떡볶이를 내놓는다.

이 카페의 떡볶이는 모두 4가지. 전통 떡볶이에 모차렐라 치즈를 얹은 빨간떡볶이와 고추장 대신 자장면의 춘장으로 버무린 사천떡볶이, 일본산 카레를 넣은 카레떡볶이, 카르보나라 스파게티처럼 양념한 크림소스떡볶이다.

빨간떡볶이 말고 나머지 3가지는 한국식 떡볶이 맛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 손님을 위한 메뉴다. 각각 중국과 일본, 서양 고객을 위해 개발했단다.

이 가게만의 고유한 요리법도 있다. 사천떡볶이는 색은 까맣지만 약간 매운 맛이 난다. 비결은 바로 청양 고추다. 카레떡볶이는 강황이 좀 적게 든 카레 가루를 써 부드럽게 만든다.

이곳에서만큼은 커피나 과일 주스의 사이드 음료로 떡볶이를 먹는 게 어색하지 않다. 한국식 카페 문화에는 한국 음식이 있어야 한다는 게 딸깍발이의 철학이다. 카페에서 조각케이크나 와플을 파는 게 한국인이 서양식 음식 문화에 익숙해지도록 하려는 외국 기업의 마케팅 전략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02)2267_7009

● 세계인을 위한 고급스런 간식으로

떡볶이 가게 하면 아직까지 길거리 포장마차나 작은 분식집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지난달 서울 서초구 서초동 강남역 근처에 문을 연 베거백에 들어서면 이런 이미지가 한번에 무너진다. 세련되고 도시적인 내부 인테리어가 최신식 커피 전문점이나 퓨전 레스토랑 같은 분위기다.

메뉴를 보면 한 번 더 놀란다. 총 8가지 떡볶이를 판다. 고추장이 거의 들어가지 않아 붉은색 떡볶이는 드물고 검은색 갈색 흰색 등으로 다양하다.

그 중 단연 눈에 띄는 메뉴는 싸먹는 떡볶이 '랩스 베거'. 납작한 밀전병에 칠리 소스로 양념한 떡볶이를 싸서 플레인 요구르트를 찍어 한 입에 쏙 넣으면 이게 진짜 떡볶이인가 싶다.

칠리 소스의 매콤한 맛이 요구르트의 상큼하고 시원한 맛과 묘하게 어울린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많이 먹는 멕시코 요리인 파히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개발한 이 메뉴는 3월 농림수산식품부와 한국쌀가공식품협회가 주최한 '2009 서울 떡볶이 페스티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아구찜을 본떠 만든 떡볶이 '레드마린 베거'도 이색적이다. 아구찜 소스와 야채, 콩나물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아구 대신 떡을 넣었다. 소 목뼈 육수로 만든 '브라운 빈 베거'나 자체 개발한 두유 크림을 넣은 '화이트 로 베거'는 아이들 간식으로도 안성맞춤.

이희종 연구개발팀장은 "두유와 흰 우유를 같은 양 섞고 밀가루를 약간 넣어 걸쭉하게 만든 두유 크림은 빵이나 음료에 흔히 쓰이는 휘핑 크림보다 칼로리가 낮아 다이어트에도 좋다"고 설명했다.

베거백이 내세우는 모토는 '떡볶이의 세계화'다. '국민 간식' 떡볶이를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까지 부담 없이 간편하게 즐길 수 있게 하겠다는 계획이다. 세련된 인테리어와 '테이크 아웃용'포장 용기도 이를 위한 것이다. (02)534_3877

● 고유의 맛 지키려는 자존심도

떡볶이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뭐니뭐니해도 눈물 찔끔 날 정도로 매운 맛이 살아 있어야 정말 '떡볶이답다'는 의견도 많다. 2007년 2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선릉역 근처에 터를 잡은 오다리집은 떡볶이의 바로 그 매운 맛을 고집한다. 다만 모양이나 양념, 먹는 방식으로 이 가게만의 개성을 살렸다.

오다리집의 떡볶이는 유달리 크다. 방앗간에서 갓 나온 말랑말랑한 떡국용 가래떡을 듬성듬성 썰어 바로 떡볶이를 만든다. 접시에 담겨 나오는 떡 길이가 족히 20cm는 돼 보인다. 굵기는 여자 손가락 두세 개 겹쳐 놓은 것만큼 두껍다. 가위로 일일이 잘라 먹어야 한다. 부산식 떡볶이란다.

부산 출신 박상현 사장이 "한국식 간식으로 승부를 걸어 보겠다"고 오다리집을 차?때 주변에선 "길거리 음식 팔아서 뭐가 남겠느냐"며 말렸다. 하지만 지금은 그만의 아이디어가 담긴 떡볶이가 입 소문을 탄 덕에 체인점도 냈다.

이곳의 떡볶이는 무턱대고 맵지만은 않다. 양념이 좀 더 고소하고 걸쭉하다. 그 비결은 바로 청국장 가루. 고추장 양념에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을 정도로 청국장 가루를 넣었다.

양념과 물을 넣고 졸일 때 꼭 뚜껑을 덮어 두는 것도 개성 있는 맛을 내기 위한 오다리집만의 아이디어다. 박 사장은 "뚜껑을 덮어 떡을 찌듯이 만들면 떡에 양념이 더 잘 배고 쫄깃한 맛도 더 잘 산다"고 말했다. (02)539_1340

임소형 기자 precare@hk.co.kr

■ 밀가루 떡볶이와 쌀 떡볶이

● 떡볶이를 만드는 데는 보통 밀가루 떡이나 쌀가루 떡을 쓴다. 밀떡과 쌀떡의 가장 큰 차이는 단백질 성분.

● 밀가루는 쌀보다 단백질 함량이 2배 가량 많다. 그 중 많은 부분이 물에 녹지 않는 단백질인 글리아딘과 글루테닌이다. 밀가루에 물을 섞어 반죽하면 두 성분은 끈기 있는 글루텐으로 바뀐다. 밀떡이 특히 쫄깃쫄깃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 쌀에는 글루텐이 없다. 대신 녹말 성분이 촘촘하게 규칙적으로 배열돼 있다. 쌀에 물을 넣고 가열하면 녹말의 규칙적인 구조가 흩어지면서 사이사이로 물이 들어가 마치 풀처럼 점성이 강한 상태가 된다. 이렇게 만든 쌀떡은 부드럽고 소화도 잘 된다.

● 요즘 맛있다는 떡볶이 가게를 가 보면 밀떡보다는 쌀떡을 많이 쓴다. 웰빙 음식을 찾는 소비 경향의 영향이기도 하고, 조리 과정에서 나타나는 특징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쌀가공식품협회 산하 떡볶이연구소의 황재호 연구원은 "같은 조건에서 요리했을 때 밀떡이 쌀떡보다 퍼지는 속도가 더 빠르다"고 설명했다. 떡이 퍼지면 아무대로 맛이 덜하다.

● 집에서 만드는 떡볶이에도 쌀떡을 많이 쓴다. 이때 냉장고에 보관했던 쌀떡을 쓰면 별로 맛이 없다. 수분을 빼앗기며 딱딱하게 굳는 현상이 냉장실의 온도인 0~5도에서 가장 빨리 일어나기 때문이다. 쌀떡의 노화를 막으려면 말랑말랑할 때 영하 20~30도에서 급속 냉동시키면 된다. 수분을 뺏기기 전에 얼어버린다. 기름을 살짝 쳐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임소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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