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성마비가 심해 자기 이름조차 말하기 힘든 김혜영(34ㆍ여)씨는 온 몸을 비틀면서 입 속에서 힘겹게 가사를 우물거린다. 자폐증으로 평소 남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던 주예원(20ㆍ여)씨도 지휘자의 눈을 바라보며 박자를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긴장으로 표정이 굳어질 법도 한데 단원 30명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막내 단원 최민기(5)군부터 최고령 한대영(57)씨까지 하나다.
올해 정기 공연(11월 10일)을 두 달도 채 남겨 두지 않은 16일 경기 고양시 탄현동 홀트일산복지타운에서 벌어진 장애인 합창단 '영혼의 소리로'의 연습 모습이다.
합창단은 꼭 10년 전인 1999년 5월 오디션을 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미혼모에게서 태어나고, 장애 때문에 입양도 되지 못한 300여명의 복지타운 원생 중 30명을 가려 뽑았다. 단원들은 다운증후군 뇌성마비 정신지체 등 중증 장애를 앓고 있지만 노래를 부르고 싶고, 노래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열정만은 세상 누구 못지 않았다.
입단 3년차인 막내 단원 최민기군은 누나 형 단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엉덩이를 흔들며 만화영화 주제가를 부르는 모습은 영락없는 개구쟁이다. 자신이 엄마에게 버려졌다는 사실도, 희귀병 때문에 다 자라야 130㎝도 안 되는 작은 키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도 모른 채 최군은 이날도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최군의 키는 현재 101㎝로 또래보다 10㎝ 가량 작다.
최군은 세상에 나온 첫날 생활고 때문에 미혼모 엄마에게 버림을 받았다. 이건 단지 고난의 시작에 불과했다. 옹알이와 뒤집기를 하면서 새 가정으로 입양되기를 기다리던 중 심장 기형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생후 7개월, 손바닥만한 작은 가슴을 열어 수술을 해야 했다.
갓 돌이 지나자 이번에는 뇌병변(중추신경 손상으로 인한 복합장애) 1급 장애 진단을 받았다. 또 안검하수로 눈꺼풀이 처져 앞을 보려면 고개를 뒤로 한껏 젖혀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누난(Noonan)증후군이라는 희귀병 때문이었다. 선천성 심장 기형, 왜소증, 지능 박약 등 성염색체 이상으로 생기는 누난증후군의 특징이 나타나고 있음을 정작 자신은 알지 못한다.
최군보다 더하고 덜함은 있지만 몸과 마음에 큰 상처 하나씩은 갖고 있는 단원들. 그래서 이들이 만들어 내는 화음은 더욱 특별하다.
특별함을 입증이라도 하듯 합창단의 수상 경력은 화려하다. 6월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열린 '안톤 브루크너 국제합창대회'에서는 특별연주상 특별지휘자상 특별참가상을 휩쓸었다. 본선 무대에서 '소나무' '오 솔레미오' '아베마리아' 등을 한국어 독일어 영어 등으로 노래해 주목을 받았다.
23개국에서 22개팀, 1,300여명이 참가한 권위 있는 무대에서 거둔 성과였다. 이 대회에서 장애인 합창단이 수상한 것은 물론, 참가한 것조차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시상식에서 국제합창올림픽조직위원회(ICOC)는 "음악을 통해 꿈과 희망을 전하는 아름다운 화음이 세계인을 감동시켰다"고 극찬했다. 최군은 이 대회 마지막 '우정의 콘서트'에서 '오 솔레미오'를 직접 지휘해 갈채를 받았다.
합창단이 지금의 위상을 찾기까지 여정은 고달팠다. 30명 중에 악보를 볼 줄 아는 단원은 한 명도 없다. 들어서 느끼는 게 노래를 배우는 유일한 방법이다. 지휘자 박제응(성악가)씨가 일주일에 세 번, 한 시간씩 1년 간 연습을 시키면서 수백 번 불러 줘도 가사를 못 외우는 단원이 절반을 넘는다.
박씨는 "고생고생해서 아이들이 무대에 설 때는 정말 보람이 크다"고 말한다. 박씨는 이탈리아 밀라노시립학교 성악 교수로 재직하다가 개인 사정으로 귀국한 후 1999년 창단 때부터 함께해 왔다.
연습의 어려움은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창단 때만 해도 음악 치료의 효과를 인정해 매년 800만원에서 최고 6,000만원까지 나오던 경기도와 고양시의 보조금이 시간이 지나면서 끊기기 시작했다. 단복이나 간식은 고사하고 공연을 다니기도 막막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2003년 중외제약이 공연 지원 등에 나서게 된 것이다. 특히 올해 초 안톤 브루크너대회 초청을 받고도 항공료 숙박비 등을 마련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모습을 본 이 회사 이종호 회장은 회사를 통해 숙박비를 지원하고 대한항공으로부터는 비행기표를 후원받았다.
박꽃송이 홀트일산복지타운 사회복지사는 "단원들이 주변의 도움을 통해 새로운 환경이나 사람들을 만나면서 마음을 열어 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 이웃사랑 팔걷은 중외제약
6년전부터 '영혼의 소리로' 지원독거노인·미혼모들에게도 손길
중외제약이 홀트일산복지타운 장애인 합창단 '영혼의 소리로'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3년. 대한간호협회 80주년 행사장에서 합창단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감동받은 이종호 회장이 후원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홀트일산복지타운 관계자는 "대부분 후원자들이 후원액을 먼저 정해 놓고 '우리가 합창단에 얼마를 지원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데 중외제약은 '무엇을 도울 수 있겠느냐'고 물어 왔다"며 "2003년부터 이런 부분을 한결같이 지원해 주고 있어 든든하다"고 말했다.
중외제약은 주로 단원들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대부분 시간을 복지타운 안에서 보내야 하는 단원들에게 세상과 접할 기회를 주자는 생각에서다. 매년 병원 초청 공연 등 10여차례 공연을 주선하고 있으며, 2007년 1월에는 빈 어린이 합창단과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다.
특히 6월 합창단이 '안톤 브루크너 국제합창대회'에 참가할 때는 회사 직원을 파견해 참가 전 준비부터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전 과정을 직접 챙기도록 했다. 신입사원 연수 과정에도 복지타운 봉사활동을 포함시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단원들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계기로 삼고 있다.
그렇다고 중외제약의 경제적 지원이 적은 것은 결코 아니다. 대학과 구청 강당 등을 돌며 매년 정기 공연을 해 왔던 합창단이 큰 무대에서 노래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합창단은 중외제약과 후원 결연을 체결한 이듬해인 2004년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했으며 이후 줄곧 호암아트홀에서 정기 공연을 해오고 있다.
중외제약은 소외된 이웃에 대한 사랑을 장애인뿐 아니라 독거노인, 북한 어린이, 미혼모 등에게로 확대하고 있다. 독거노인 지원단체 '더불어 사는 사회'를 비롯해 '북한 어린이 살리기 운동본부' '평양 적십자병원' 등에 정기적으로 의약품을 제공하고 있다.
2007년 5월 11일 '입양의 날'을 앞두고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미혼모들에게 임신빈혈치료제를 지원한 데 이어 대한사회복지회에 미혼모의 출산과 산후 건강 관리에 필요한 의약품을 전달하고 있다.
중외제약 홍보팀 조하나 과장은 "중외제약은 이윤 추구보다 생명과 환경 보호를 우선 실천하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고 말했다.
조 과장은 또 "폴리염화비닐(PVC) 재질 수액백에서 환경 호르몬이 검출된다는 소식이 전해진 1990년대 초부터 수액백을 전면 Non_PVC로 교체했다"며 "인건비 물류비 등을 따지면 사실상 적자를 내는 제품이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충실하기 위해 국내 시장의 60%에 달하는 물량을 공급해 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허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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