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청와대에서 한나라당의 차기 대선주자 물망에 오르는 인사들을 잇달아 만났다. 지난 3일에는 정운찬 총리 후보자와 독대했고, 9일에는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와 회동했다.
17일 오전에는 대통령특사 자격으로 유럽을 다녀온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독대했다. 이날 저녁에는 시∙도지사 초청 만찬 자리에서 김문수 경기지사 등을 만났다. 또 앞으로 한나라당 의원들과의 간담회 등을 통해 원희룡 홍준표 의원 등과도 만날 예정이다.
이 대통령이 이들과 차기 대선을 주제로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대선후보 경선 참여 가능성이 있는 여권 인사들과의 연쇄회동이라는 점에서 예민한 시선이 쏠리고 있다.
현재 여권의 차기 구도는 박 전 대표 독주체제에서 정 총리 후보자 지명과 정 대표의 등장으로 다자 경쟁 체제로 변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만일 정 대표와 정 후보자가 정치적 역량을 보이며 광폭 행보에 나설 경우 친이계와 친박계로 양분된 여권 내부의 역학 구도도 요동칠 수 있다. 후발 대선주자들도 이런 변화 가능성에 은근히 기대를 걸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최근의 연쇄 회동은 의도적으로 기획된 것은 아니지만 이를 통해 이 대통령이 구상하는 차기 대선 구도의 일단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 대통령은 차기 대선 문제에서 특정 후보를 배척하거나 지지하지 않는 중립적 원칙을 지킨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정치사적으로 여권 2인자의 힘이 커질수록 대통령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위축된다. 반대로 차기 후보군이 늘어나면 '분할 통치' 전략을 통해 국정장악력을 높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박 전 대표로의 쏠림 현상이 강화되기 보다는 다자 경쟁 체제로 변하는 게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여권 관계자는 "후보간 경쟁이 치열할수록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도 늦출 수 있고, 야권을 압도하는 정치적 흥행에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문민정부 시절 신한국당의 대선후보 경선 체제를 연상케 한다.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은 이회창 현 자유선진당 총재와 이인제 의원 등을 비롯해 9명의 주자가 경쟁하며 정치적 붐을 일으켰다. 때문에 2012년 여권의 대선후보 경선도 당시처럼 '9룡' 대결로 전개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대선주자가 너무 많을 경우 오히려 경쟁이 너무 가열돼 국정운영에 걸림돌이 될 수 있고 여당 분열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누가 대선후보 경선에 나설지 현재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박 전 대표에 이어 정 대표, 정 총리 후보자, 원희룡 홍준표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지사 등이 '용(龍)들의 전쟁'에 나설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이밖에도 이재오 전 의원과 이완구 충남지사, 정우택 충북지사 등도 경쟁에 가세할 가능성이 있다.
염영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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