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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복수노조와 기업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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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복수노조와 기업의 선택

입력
2009.09.18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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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이 깊은 시름에 빠졌다. 내놓고 말하기는 그렇고, 그냥 있자니 걱정이 태산이다. 내년부터 복수노조가 허용되기 때문이다. 일반 국민은 생소하게 여길만하지만 일부 기업에는 그야말로 흥망성쇠를 좌우할 중대사이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두 노동운동 중심이 존재하지만 대부분 기업에는 하나의 노조만 있다. 복수노조를 허용하지 않는 법적 규제 때문이다. 이 규제가 풀리면 기업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현재보다 노사관계 비용을 더 많이 떠안게 된다.

선진국 길목의 불가피한 선택

전자산업이 특히 고민이 많다. 각고의 노력 끝에 세계 정상 자리에 올랐지만 세계적으로 가장 경쟁이 치열한 산업 특성상 노사 문제로 인한 혼란과 방황은 곧장

급전직하의 추락을 초래할 수 있기에 위기의식이 남다르다. 그 동안 힘들게 노사관계 관리에 성공해서 얻은 안정이 흔들리면 자칫 다시 원점에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러니 고민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렇다고 이 길을 가지 않을 수 있을까. 이미 국제노동기구(ILO)의 국제노동기준이나 미국 유럽 등과의 자유무역협정, 유엔 글로벌 컴팩트(Global Compact), 국제 상거래를 규율하는 ISO의 사회적 책임 규준(ISO 26000) 등등, 복수노조를 허용해야 할 국제적 압력은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이다. 이런 압력은 세계화 시대에 정부가 나서서 막아줄 수는 없고 기업들이 바로 상대해야 된다. 더욱이 노조를 만들 수 있는 권리는 헌법이 규정한 기본적인 권리이다. 따라서 기본권을 찾겠다고 나선 이들이 법적으로 활로를 찾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본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이미 13년 전에 복수노조를 수용했다고 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선진국의 국격을 갖추어 나가겠다고 다짐한 것이 그 것이다. 다만 그 동안에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해서 시행을 유예해 왔다. 이에 비춰 좀 더 시간을 주면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다시 유예를 추진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는 싸움이 되기 싶다. 복수노조 유예는 우리의 노사관계 경쟁력이 세계 꼴찌 수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 될 수 있다.

이제라도 힘든 길을 떠날 채비를 서두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나 세계시장에서 활약할 우리 기업들을 위해서도 현명한 선택이라고 본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우리 기업들이 재무관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준비한 결과 이번 세계 경제위기에서는 건실해진 체력을 바탕으로 오히려 상대적 우위를 차지하게 된 과정을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사람 관리가 재무관리 못지않게 중요해졌다. 우리가 앞서 걸은 길을 뒤따라온 다른 후발 주자들도 언젠가는 거치게 될 과정이기에, 우리가 먼저 잘 준비하면 장차 전개될 윤리적 자본주의의 열매를 먼저 따먹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기업의 고민과 부담 덜어줘야

사회 전체적으로는 기업들에게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떼라고 무작정 윽박지르기보다는 격려하고 도와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복수노조 허용으로 노조가 둘로 늘어나는 데 따른 산술적 추가비용 때문에 기업들이 그토록 주저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생산 현장이 노ㆍ사뿐 아니라 노ㆍ노간의 만성적 갈등과 다툼의 포로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기업들의 고민을 헤아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노조는 복수노조를 허용한다고 해서 무리한 노동운동에 매달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 또 정부는 불법적이고 불합리한 노사관계의 피해를 기업이 짊어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부는 자신의 영향력 하에 있는 공공부문의 노사관계부터 합리적 형태로 이끄는 솔선수범에 힘쓸 필요가 있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 노사관계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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