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당시, 동백림 사건으로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이응노 화백이 그 모진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차가운 감옥에서 물감을 구할 수 없자, 화가는 시멘트 맨바닥에 콩밥 속의 밥풀 하나하나를 짓이겼다 한다. 그리고 그 끈적끈적한 풀에 딸려 나온 간장으로 착색한 그림을 쉴 새 없이 그렸다.
사실 이응노의 영혼을 구한 것은 시베리아 유형소에서 솔제니친을 구했고(그는 그곳에서도 마음 속으로 글을 썼다), 유태인 수용소에서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그는 그곳에서 깨알같은 글씨로 자신의 생각을 정립했다)을 구하기도 했던 바로 그것. 몰입이었다.
영화 <내 사랑 내 곁에> 를 보니 새삼 김명민이라는 배우의 몰입에 감탄하게 된다. 20kg이라는 경이적인 감량 때문만이 아니다. <하얀 거탑> 에서 외과 의사 역이었을 때는 거의 준 수술 실력을 겸비했다는 소리를 들었고, <베토벤 바이러스> 에서는 당장 지휘를 해도 좋을 것 같다는 합격점을 받은 그였다. 베토벤> 하얀> 내>
이제 루 게릭병 환자 역할을 맡았는데, 그는 정말 아직도 환자처럼 보인다. 시사회에서 본 그는 그토록 도도하던 강마에의 모습은 간데 없고 한 마리의 무기력한 여윈 사슴같이 가늘고 말라 있었다.
국외에서 김명민 정도의 배우를 찾으라고 한다면 로버트 드니로가 있을 것이다. 그는 <분노의 주먹> 을 찍을 때 제이크 라모타라는 전직 복서 역할을 맡으면서, 23kg을 줄였다 다시 30kg을 살찌우며 완벽한 제이크 라모타의 환생이라고 불리웠다. 그를 지도한 복싱 코치가 당장 복싱 경기에 나가도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을 정도였으니까. 로버트 드니로는 복서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복서 그 자체가 된 것이다. 김명민의 경우에도 지금은 환자 그 자체의 상태인 것처럼 보여 마음이 무척 아프다. 분노의>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또 있다. 배우는 협업을 하는 작품을 한다는 것. <분노의 주먹> 은 마틴 스콜세지라는 명 감독의 손에서 1980년대를 대표하는, 아니 미국 영화를 대표하는 걸작의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드니로의 희생이 무색하지 않게, 첫 장면은 아직도 내 마음을 떨리게 한다. 뿌연 연기 속에서 까발레리아 루스띠까나의 간주곡에 맞추어 드니로가 몸을 푸는 이 장면. 거대한 링은 성난 황소를 가둔 우리같아 보이고, 그는 상대편 선수가 아닌 자신의 그림자와 싸우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이 장면에 반해 근 1년간 잠들 때마다 이 영화의 오프닝을 보고 잔 적도 있었다. 분노의>
그런데 엊그제 시사회를 한 <내 사랑 내 곁에> 는 김명민의 몰입과 노력을, 아니 희생을 거의 무(無)로 돌려 버린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윽박지르다시피 "니들이 사랑을 알아?(실제 대사에서도 나온다)"라는 식으로 사랑에 대한 직설을 구사하지만, 정작 사랑의 감정에 대해서는 말하는 게 없다. 정말 저래도 될까 싶을 정도로 영화의 공간성이나 시간성에 대한 성찰이 모두 부족하다. 내>
그래서 가슴이 아프다. 이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에서 우리 모두가 20kg이나 감량하며 거의 목숨을 걸었던 김명민의 말라가는 나신을 목도하는 것 외에, 무엇을 더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화도 난다. 영화는 한 배우에게 가학의 관음증을 행사한 것 외에 대체 무엇을 주었단 말인가.
우리 한국 배우들의 치열한 연기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한국 영화의 저력이 필요하다는 사실. 반대로 한 감독을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배우의 선구안이 필요하다는 사실 모두에 뼈가 저린다. 그렇다. <내 사랑 내 곁에> 는 김명민의 살이 아니라 박진표의 가슴과 머리로도 만들어야 했었다 내>
심영섭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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