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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먼 사태 1년-한국 경제 얼마나 안전한가] <3> 금융기관과 기업은 달라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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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먼 사태 1년-한국 경제 얼마나 안전한가] <3> 금융기관과 기업은 달라졌나

입력
2009.09.16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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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국내기업들의 대응력은 매우 뛰어났던 것처럼 보인다. 전 세계적 수요기반붕괴에도 불구하고 IT분야에서 삼성의 지배력은 더 공고해졌고, 세계 최대 자동차 기업인 GM마저 파산하는 와중에도 현대차의 시장점유율은 더 높아졌다. 다른 대기업들도 매 분기마다 '깜짝 실적'을 내 놓았다.

실제로 삼성 현대ㆍ기아차 SK LG 포스코 등 글로벌 레벌의 국내기업들은 지난해 9월 금융위기 발발 이후 곧바로 위기대응체제로 전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삼성의 경우 먼저 인력 조정과 경비 절감, 현장 경영 강화 등에 주력했다. 특히 공을 들인 것은 공급망관리(SCM). 3~7일이었던 생산ㆍ판매 계획 주기를 아예 하루 단위로 줄였다.

주문한 만큼 생산하니 재고가 없어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현대ㆍ기아차는 리먼 브러더스 파산 이후 전 세계 시장 상황을 상시 점검하는 상황실을 운영했다.

미국 현지 법인 등을 통해 올라오는 소비자 동향을 매일매일 체크하고 환율 변동에도 민첩하게 대응했다. LG전자는 각 사업장에서 발생 가능한 경영 리스크를 사전에 예측, 실시간으로 관리하는 '통합 리스크 관리 체계'를 전 세계 80여개 법인에서 가동했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전부다. 대부분 기업은 단순히 현금 유출을 최소화하는 것을 리스크 관리의 전부로 인식했다. 마른 수건을 다시 짜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식이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달 500대 상장사의 비상경영 조치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경비절감(79.8%ㆍ중복응답)이 가장 컸고, 임금동결ㆍ삭감(57.7%), 복리후생축소(27.5%), 설비투자 동결ㆍ축소(27.3%), 신규채용 동결ㆍ축소(25.7%)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위기를 넘기는 데는 성공했지만, 정말로 위기대응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는지는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엄밀히 말해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도 국내 대기업들이 깜짝실적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환율효과'가 컸다. 15일 전경련이 증권사 애널리스트 9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수출 경쟁력이 높아진 원인에 대해 철강과 석유화학 업종의 경우 응답자의 69.2%가 환율 상승을 꼽았다.

자동차도 환율상승(53.2%)이 경쟁력 향상의 가장 큰 요인이란 응답이 많았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환율폭등으로 국내기업들이 큰 수혜를 입었듯, 이번 대기업 호조에도 '환율 착시'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원화 가치 상승으로 더 이상 환율 효과를 기대하긴 힘든 상황이다.

정작 중요한 구조조정은 오히려 소홀했다는 평가다. 사실 위기는 구조조정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회이기도 하지만, 국내기업들은 그 찬스를 무산시킨 측면이 많다는 평가다. 예컨대 건설, 조선업계의 경우 A~D 등급으로 구분해 D등급은 퇴출시키고 C등급은 워크아웃을 통해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했지만 당시 업계와 금융권에서는 기준이 너무 느슨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나마 대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은 더욱 어려웠다. 주채무계열 그룹사와 MOU를 맺은 한 채권단 고위관계자는 "구조조정을 통해 재무구조를 슬림화해야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을 수 있다"면서 "위기가 너무 빨리 지나가면서 기업들의 구조조정에 대한 절박감이 옅어졌다"고 말했다.

결국 위기는 넘겼지만 비용절감이라는 임시방편에 따른 것이었고,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라 할 수 있는 구조조정에는 소홀했던 셈이다.

신창목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환율 상승 등의 영향으로 결과적으로는 리스크 관리를 잘한 것처럼 보이지만 만약 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더라면 대표기업들의 실적도 실망스러웠을 것"이라며 "상황이 다소 나아졌다 해서 안일하게 지나갈 것이 아니라 진정한 리스크 관리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 금융기관외화유동성·자기자본비율 개선 불구S&P 등 국제 신용평가사 의구심 지속높은 예대율 등 근본 체질개선 미흡

"만기 돌아오는 외채 상환 비율이 70%가 넘었습니다."

전세계 금융시장이 완전히 얼어붙었던 지난해 가을, 국내 은행 자금부장들은 만기가 돌아오는 외채 상환요구에 응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금융기관의 상호 불신이 극도에 달하자 우리 은행들에 돈을 빌려주었던 외국 금융기관들은 앞다퉈 돈을 회수했다.

결국 한국은행은 자체 보유자금과 한미 통화스와프를 통해 들여 온 외화자금을 은행들에게 스와프 형식으로 빌려줬고, 은행들은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 당시 국내 은행들에 대해 제기된 문제는 외화유동성만이 아니었다. 외신과 신용평가사들은 높은 예대율 등 국내 은행들의 취약성을 지적했다.

● 외화유동성, 자기자본비율 등 개선

1년이 지난 지금 은행들의 외화 유동성 상태는 양호한 수준으로 돌아왔다. 국제 금융시장의 안정으로 국내 은행들은 중장기 외채 발행을 통해 외화자금을 확보했고 단기외채 차환율은 3월 이후 100%를 넘겼다.

만기가 돌아오는 단기외채에 대한 상환 요구가 거의 없어지고 전액 연장되고 있다는 뜻. 외화자금시장이 안정을 찾으면서, 한은은 스와프 방식으로 공급한 외화 중 자체자금으로 공급했던 것은 전액 회수했고, 한미 스와프 자금도 절반 정도 회수했다.

지난해 말 감독당국의 적극적 요구로 자본 확충을 한 덕분에 은행들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도 2007년 말 12.31%에서 올해 6월 말 13.74%로 크게 높아졌다. BIS 비율 중 기본자본 비중도 2008년 말 71.8%에서 올해 6월 말에는 75%까지 증가했다. 지난해 6월 말 126.5%까지 상승했던 예대율도 1년 후인 올해 6월 말에는 114.1%까지 낮아졌다.

● 국제 신용평가사들 의구심 지속

그러나 지표 개선에도 불구하고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은 아직까지 국내 금융기관의 체질에 대해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톰 번 무디스 부사장은 16일 방한 기자회견에서 "금융위기와 세계 경기침체 이후 한국의 가장 큰 우려사항은 금융기관의 안정성"이라며 "금융기관 건전성이 한국 국가신용등급 결정에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번 부사장은 "한국은 정부의 재정확대 정책의 영향으로 경제가 안정적으로 회복되고 있으나 금융기관의 외화 유동성 관리와 환율 변동성, 리스크 관리의 효율성, 금융기관 민영화나 구조조정 등 금융기관 건전성이 유지될지가 관건"이라고 주장했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도 지난해 금융위기 이후 '부정적'으로 하향된 국내 금융기관의 신용등급 전망을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다.

권재민 S&P 한국기업 및 공익사업 신용평가팀 책임자는 최근 세미나에서 "경제가 15% 성장한 3년 동안 은행들의 중소기업 여신공급은 53%나 늘어났다"면서 "신용보증기관의 보증이나 대출 만기연장 등의 효과가 떨어지면 대손충당금을 더 쌓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근본적 체질 개선은 미흡

최악의 금융위기는 탈출했지만 우리 금융기관들에 대해 우려의 시선이 거두어지지 않는 것은 근본적 체질 개선은 미흡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는 뜻이다. 은행 경영진들이 올해는 이구동성으로 '내실경영'을 외쳤지만 시스템을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경기가 좋아지면 경영 목표가 언제든지 '외형확장'으로 바뀔 수 있다.

올해 상반기 주택담보대출의 급증도 "형편이 좋아지면 언제든지 대출 장사에 나설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금융연구실장은 "지난해 위기 당시에 우리 금융기관의 취약점이 많이 제기됐는데 경기가 급속도로 회복되면서 제대로 후속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신 실장은 "원화유동성 관리비율의 경우 지난해 은행들을 위해 기준을 3개월에서 1개월로 바꿔주는 등 완화조치를 취했지만 이제 위기가 지나간 만큼 다시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위기 상황에서 은행들에게 싼 값에 외화자금을 빌려줬는데 이에 대한 책임도 확실히 물어야 '나중에 위기가 오면 또 정부가 구해주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과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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