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뇨 현상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본 이들 중 하나가 바자우족이다. 비교적 수심 낮은 바다에 수상가옥을 짓고 사는 이들에게 수위가 높아진 바닷물은 위협일 수밖에 없다. 바닷물이 집 바닥 가까이 차올랐다. 언제 물에 잠길 지 몰라 불안불안하다. 벌써 집을 버리고 떠난 이들도 있다. 삶의 터전이 한순간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바자우족은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에 살고 있는 소수 종족이다. 물에서 태어나 물에서 생을 마친다.
그들에게 허락된 땅이란 죽어 묻히는 작은 땅이 전부이다. 그들에게는 국적이 없다. 육지에 올라가 장을 보는 일에도 위험이 따른다. 그러니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갈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곳에서도 아이들은 자란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몇 해 전 캄보디아 톤레삽 호수의 한 수상가옥을 보며 애를 태우던 일이 떠오른다. 어른이 보이지 않는데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가 잠에서 깨어 울고 있었다.
바닥을 가늠하기 어려운 흙탕물에 오물이 둥둥 떠다니던 호수. 혹시 저러다 물에라도 빠지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다. 누구에게나 허락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땅, 그러고 보니 나 또한 하루의 대부분 공중에 떠 있다. 어릴 적 어머니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한 말을 하고 또 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땅 위에 두 발을 단단히 붙이고 서 있어야 한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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