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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의병장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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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의병장 손자

입력
2009.09.15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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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못 고색창연한 이미지의 한말 의병(義兵)이 역사책 갈피에서 빠져 나와 가깝게 다가선 느낌이다. 한민구 신임 육군참모총장이 한말 의병장 청암 한봉수(韓鳳洙) 선생의 친손자라는 보도에 문득 "한말 의병이 언제적 일인데…"라는 의문이 들었다. 기사와 자료를 살펴보니 한봉수 의병장은 1883년 4월에 태어나 1972년 12월 작고했다. 육사 31기인 한민구 총장이 사관학교에 들어간 것이 1971년이니, 생도 2학년 말까지 의병장 할아버지가 살아 계셨다. 아마도 동갑인 내 또래들이 책에서나 읽은 항일 투쟁의 산 증인 슬하에서 훈육을 받은 것이 군인의 길을 택한 동기라고 한다.

■한봉수 의병장은 충북 청원군 내수읍 세교리 출신이다. 청원은 기미년 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의 우두머리 의암 손병희의 고향이다. 그뿐 아니라 단재 신채호, 임정 국무총리 신규식, 33인 대표 신석구 권동진 권병덕, 서로군정서 독립군의 신백우 등의 고향도 근방이다. 청암은 1895년 창설된 대한제국의 근대적 지방군 진위대(鎭衞隊)에서 복무하다가 1907년 8월 일제가 군대를 강제 해산하자 항일의병에 가담한다. 그리고 이내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두각을 나타내 100여명으로 이뤄진 '왜적구축대'를 지휘했다.

■그는 청주 오근장 전투에서 일군 헌병대위를 사살하고, 현금 수송대를 습격해 군자금을 확보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후 전의 목천 평택 여주 횡성 문경 등지의 33차례 전투에서 승승장구한 기록을 남겼다. 일제 침략이 본격화하면서 사세가 기울어 체포된 청암은 1910년 6월 내란죄 등으로 교수형이 선고됐으나 경술국치때 사면됐다. 향리에서 은둔하던 그는 1919년 고종 황제가 승하하자 서울에서 손병희 홍명희 등과 논의한 뒤 독립선언서를 지니고 귀향, 3월7일 청주 서문 우시장을 시작으로 인근의 독립만세를 이끌었다.

■일경에 체포돼 옥고를 겪은 그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작고한지 35년이 지난 2007년에는 청원군 내수읍 학평리에 그의 우국충정을 기리는 기념관등 유적지가 조성됐다. 해마다 이곳에서 추모 글짓기대회가 열려 자라는 세대에 애국심을 심어주고 있다. 그러나 친손자가 대한민국 육군의 최고 장수(將帥)에 오른 것은 그 어떤 보훈과 현양(顯揚)보다 빛난다. 할아버지를 본받아 애국 애족의 길을 솔선수범, 한말 이래 격동의 민족사를 놓고 이기적 논쟁을 되풀이하는 후세의 얄팍함을 일깨운 듯하다. 한 총장은 누구보다 훌륭하게 육군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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