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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한글로 옮긴 희귀 '십현담 언해본'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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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한글로 옮긴 희귀 '십현담 언해본' 발견

입력
2009.09.15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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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김시습(1435~1493)이 중국 당나라 고승의 선시에 주석을 붙인 '십현담(十玄談) 요해(要解)'를 언해한 16세기 희귀본이 성철(1912~1993) 스님의 서고에서 발견됐다.

성철 스님의 상좌를 지낸 해인사 백련암의 원택 스님은 15일 조계종 총무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4월 백련암 장경각 서고의 성철 큰스님 장서에서 '십현담 언해본'을 발견했다"며 "이 책자는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견된 바 없는 유일본"이라고 밝혔다.

'십현담'은 중국 선종의 한 종파인 조동종(曹洞宗) 스님인 당나라 동안상찰(同安常察·?∼961) 선사가 저술한 10가지 게송으로, 법화사상과 화엄사상을 포함한 조동종의 가풍과 수행자 실천지침 등을 7언율시로 노래한 선시다.

'십현담'은 김시습이 조선 성종 6년인 1475년에 주석을 붙여 한문으로 쓴 '십현담 요해'를 통해 널리 알려졌는데, 이번에 발견된 '십현담 언해본'은 김시습 요해본이 나온 지 73년 후인 1548년(명종 2년) 강화도 정수사에서 내용 일부를 발췌해 한글로 번역·판각한 것으로 밝혀졌다.

언해본 서명에는 '성화 을미년 도절(桃節) 재생패(哉生覇)에 청한자(淸寒子) 필추(苾芻) 설잠(雪岑)이 폭천산에서 주를 쓰다'라고 돼 있다. '성화 을미년'은 김시습의 나이 41세 때이고, '도절 재생패'는 옛 선비들이 달의 변화하는 모습에 빗대 때를 가리킬 때 썼던 용어로 3월16일을 의미한다.

'청한자'는 김시습의 또 다른 자(字)이며, '필추'는 비구라는 의미이고 '설잠'은 매월당의 법명이다. 즉 서명은 단종 폐위 후 20대 초반에 출가해 스스로 '청한자 필추 설잠'이라고 칭했던 김시습이 수락산 기슭 폭천정사에서 지었다는 뜻으로, 김시습의 한문 요해본을 한글로 옮긴 이가 요해본의 서명을 그대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서병패 문화재 전문위원은 "'십현담 언해본'에 나타나는 한글 반치음 'ㅿ'과 꼭지 'ㆁ' 표기는 16세기 중엽의 비교적 짧은 기간에만 사용된 표기여서 자료 자체가 드문 편"이라며 "이 언해본은 당시 국어사 및 서지학 연구에 중요한 희귀 자료"라고 밝혔다.

원택 스님은 "이 자료가 조선 세조∼성종 때인 15세기 중후반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불경류를 한글로 옮긴 언해본이 아니라, 16세기 전반기에 드물게 언해된 선종 서적이어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백련암의 감원(암자의 제일 어른스님)을 맡고 있는 원택 스님은 "이 밖에도 성철 큰스님의 귀한 고서와 언해본들을 상당수 발견해 서지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있다"며 "문화재로 가치가 있으면 문화재 지정을 신청하고, 언해본들은 영인본으로 만들어 국어고문학자들의 연구자료로 활동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원택 스님은 "성철 큰스님이 후학들에게 '책 보지 말라'며 참선 수행만 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장경각에 1만권이 넘는 장서를 보유하고 계셨으며 일일이 읽은 책 리스트를 작성하고 요약까지 해놓으셨다"고 말했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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