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적 정치제도로 인식되는 직접민주주의의 현재의 좌표와 미래적 의미를 확인하는 자리가 서울에서 마련됐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유럽주민발안과국민투표기구(IRI-Europe)가 주최하는 '2009 현대 직접민주주의 글로벌 포럼'이 1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막했다. 16일까지 계속되는 포럼에는 15개국에서 온 학자와 민주주의 운동가 60여명이 참여한다.
함세웅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한국사회에서는 아직 국민발안의 개념조차 낯설고 국민투표도 여전히 '위로부터'만 기획되고 있다"며 "UN이 정한 '세계 민주주의의 날'인 15일에 즈음해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은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첫날 기조발표를 한 얼스 랠스탑 스위스경제인총연합회 부이사장은 스위스의 직접민주주의 제도와 기업 경영의 관계를 설명했다. 직접민주주의는 언뜻 경영 효율성과 상극일 것으로 여겨지지만, 이 제도는 비즈니스의 중심적인 배경 조건을 조성한다는 것이 발표의 요지였다.
랠스탑 부이사장은 "스위스는 법인세가 낮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큰데, 이는 1948년 이후 500여 차례 실시된 국민투표의 결과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스위스경제인총연합회가 주도한 정치적 캠페인은 90% 이상의 국민 찬성을 이끌어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포괄적인 실업보험과 연금시스템 등 역시 국민투표에 의해 채택된 사회적 보호제도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아담 루펠 미국 국제평화연구소 편집인은 '글로벌 위기'라고 지칭되는 정치·사회적 굴곡들과 직접민주주의의 관계에 주목했다. 그는 "민주주의는 어느 때보다 널리 수용되고 있지만 세계적 차원의 도전에 직면한 국가 단위의 민주주의 제도들은 점점 더 불충분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기뿐 아니라 기후변화의 실체, 핵환산 위협, 최근엔 신종플루와 같은 전세계적 유행병이 한 나라의 대응력을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루펠 편집인은 "초국가적 민주주의의 실천을 위해 '글로벌 거버넌스'의 메커니즘을 개발해야 한다"며 IT기술의 진보로 인한 초국가적 소통의 현실화, 유럽연합이나 아프리카연합 등 정치적 프로젝트에서 그 가능성을 찾았다.
하지만 그는 "포퓰리즘, 종교정치, 권위적 자본주의"를 직접민주주의의 비관적 요소로 꼽으며, "실용적 입장에서 적법한 글로벌 거버넌스를 하나씩 세워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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