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차기 정권이 벌이고 있는 '관료와의 전쟁'은 관료시스템의 부작용에 대한 일본의 위기감이 얼마나 절박한지를 새삼 보여준다.
이번 '전쟁'은 비단 정권교체의 여파만은 아니다. 1990년대 초 '버블붕괴' 이래 일본 역대 정권에서도 관료는 늘 개혁의 중심 타깃이었다. 94년 취임한 당시 사회당의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는 "일본은 국민의 이익이 아닌 관료의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고 비판했다. '괴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도 취임 초부터 33만명인 국가공무원을 5년 내에 5% 줄이겠다고 선언하고 관료와 '일전(一戰)'을 벌였다.
하지만 거듭된 비판과 개혁시도에도 불구하고 관료시스템은 흔들리지 않았다. 정부 산하 4,500개 단체는 2만5,000명에 달하는 관료들의 '낙하산 인사'로 여전히 연간 9조엔 규모의 정부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 이른바 '족의원'과 결탁해 예산을 쌈짓돈처럼 써대고, 부처 이기주의에 따라 걸핏하면 산하 단체를 만들어내는 관료사회의 고질적 풍토도 거의 바뀌지 않았다.
맞서 싸우는 대신, '낮게 웅크린 채 움직이지 않는다'는 관료사회의 복지부동(伏地不動)식 저항에 역대 정권의 서슬 퍼런 개혁시도가 번번이 무위로 돌아간 것이다.
관료개혁을 지휘할 국가전략국 수장에 내정된 간 나오토 민주당 대표대행은 국토교통성 직원 감축을 예고하며 "불만이 있으면 '국토교통당'을 만들어 선거에 나오라"고 일갈했다고 한다. 하지만 번번이 좌절된 개혁시도와 철옹성 같은 관료시스템의 방어력을 생각하면, 그의 일갈조차 경고가 아닌 비명처럼 들릴 정도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관료개혁이 일본처럼 절박한 개혁 아젠다로 부상한 적이 없다. 김대중 정부 때 기획예산위원회가 설치됐으나, 본격적인 관료시스템 개혁을 겨냥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어 노무현 정부 때는 초기에 강력한 개혁을 추진하는 듯 했으나, 오히려 정권과 관료가 그 어느 때보다 밀착한 '기묘한 동거'로 막을 내렸다. 현 정부 들어서는 일단 공기업개혁 정도로 변죽을 울리는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관료시스템도 불가사리처럼 위험하게 웃자라는 징후가 점점 짙어지고 있다. 유관 단체ㆍ기관에 대한 관료들의 고질적인 낙하산 인사는 차치하더라도, 국회 일부 상임위 등에서 일본식 '족의원' 집단이 형성돼 관료와 유착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무엇보다 국회의 예ㆍ결산 심의가 겉돌고, 책임 있는 정책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는 게 문제다. 꺼리는 게 없어지니 '공복(公僕)'이 주인처럼 행세한다. 부처 예산 불용처리를 피해 멀쩡한 가구를 10억원이나 들여 교체한다. 또 중앙 부처가 직접 나서 매달 '이달의 최고 가수'를 뽑는 식의 '필요 행정' 영역을 벗어나는 사업에 버젓이 예산이 배정되고 있다. 감사원은 사후 약방문일 뿐이다.
하토야마 차기 정권은 그 동안 관료들이 상향식으로 편성했던 예산을 비관료가 장악하는 국가전략국을 통해 하향 편성함으로써 재정과 관료개혁의 실마리를 풀겠다는 계획이다. 이런 전략이 어떤 성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성패를 떠나 하토야마 차기 정권의 개혁행보는 일본과 비슷한 '병'을 이미 앓고 있는 우리에겐 큰 가르침이 될 것 같다.
장인철 피플팀장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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