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위기 와중에서 주요국들의 경제 위상은 요동쳤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미국 중심이던 국제경제 축이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로 옮겨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 시사주간 타임은 최근(14일자)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세계경제 주도권은 미국에서 중국 등 아시아 소비자로 옮겨가고 있다"며 "아시아 파워가 경기회복을 견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도 11일자에서 세계은행의 아시아 주요국 경제전망 상향 조정을 들어 "아시아 경제회복 속도가 서구보다 빠르다"고 보도했다. 반면 금융업과 천연자원 의존도가 높은 영국, 러시아 등은 부진을 면치 못하는 등 위기 이후 주요국들에선 희비가 엇갈렸다.
중화권, 글로벌 경제의 중심으로
금융위기 발발 직후인 지난해 말 중국정부는 2년간 총 4조 위안(한화 약 728조원)을 투입하는 강력한 경기부양책을 채택, 올해 6.1%(1분기)와 7.9%(2분기)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달성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은 저축률과 소비잠재력이 높고 기업의 외국진출이 활발해 올 성장률 전망치인 8%도 무난히 넘어서는 등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 내다본다.
블룸버그는 12일 상하이 증시의 호전, 위안화 강세 등을 들어 "중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불황으로부터 국제경제를 탈출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는 지난달 중국의 제조업 생산량이 연초에 비해 12.3%나 급등했고 소비도 15.4%나 늘었다며 "내년엔 9.5%까지의 GDP 성장이 기대된다"며 중국의 위상 변화를 강조했다.
중화권인 싱가포르의 경제력이 괄목할 만큼 성장했다는 것도 특기할만하다. 여기에는 금융위기 동안 흔들림이 없었던 중국과 인도 경제의 덕을 톡톡히 봤다. 타임은 싱가포르 항구를 거치는 이들 나라의 무역량이 오히려 늘었다고 보도했다. 당초 싱가포르는 금융위기 초반 물동량 감소로 인한 최악의 상황을 우려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기우였고 중국 등에 힘입어 싱가포르의 올 2분기 GDP는 1분기보다 무려 20.7%나 증가했고 9월 증시도 4월보다 70%나 올랐다.
영국, 러시아는 여전히 위기
뉴스위크는 지난달 '대영제국은 잊어라'는 기사에서 영국 경제가 금융위기 이후 다른 선진국처럼 회복되지 못한 채 신흥국가들에 밀리고 있음을 지적했다. 뉴스위크는 5년 내 영국의 부채가 GDP의 2배까지 치솟고, 2008년 수준으로 1인당 소득이 복구되는 데 6년은 걸릴 것으로 전망하며 "영국은 '리틀 브리튼'(Little Britain)으로서 새 역할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까지 지적했다. '강소국'으로 통했던 아일랜드의 상황도 좋지 않다. 타임은 1990년대 아일랜드가 누렸던 중흥의 거품이 꺼졌으며 "금융위기가 '켈트 호랑이'의 발톱을 뽑아버렸다"고 평가했다.
브릭스(BRIC's)의 일원인 러시아도 체면을 구기고 있다. 최근 로이터통신은 중국, 인도, 브라질 등 다른 브릭스 국가들과 달리 러시아의 GDP가 올해 8.5%나 준다는 예측이 있어 러시아가 자칫 브릭스에서 이탈하는 상황도 우려된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도 10일 "금융위기로 은행대출이 줄고 임금이 감소, 러시아 중산층이 붕괴하고 있다"고 전했다. 소련에서 독립한 뒤 2000년대들어 10%이상씩 급성장하던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등 발틱3국도 경제위기의 충격을 가장 심각하게 겪고 있다.
금융위기에 따른 이 같은 지각변동은 시장중심의 영ㆍ미식 국제질서가 쇠퇴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해 중앙은행의 역할이 강화되고 있으며 중국과 신흥시장국들이 주요20국(G20) 회의 등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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