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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여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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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여름밤

입력
2009.09.15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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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높은 곳에서만 살 수 있는 것들의

빛 냄새 가벼움 묻혀올 수 있을까, 몰라

높은 곳에서 몸 비비고 사는 허공 별빛 달빛

그들은 너무나 가벼워서

나눠 가질 짐조차 없다면 어쩌지?

정이 숨쉴 틈도 없으면 어쩌지?

갸웃대면서도

그들의 가벼움 그들의 빛 그들의 냄새

그들의 형상을 조금 얻으려고 한여름 밤 내내

심장을 환하게 열고 날아다녔지

돌아와 잠을 청하면

이부자리 가득 쏟아져 내리는 달빛

하루분의 산고(産苦)

금자루 은자루 속에 담아

새벽까지 흔들며 노래 불러주는

그네같은 허공

● 가을이 더 깊어져서 가을빛이 당신을 온통 점령하기 전에 서둘러 이 시를 보내드린다. 당신은 여름밤에 어떤 일들을 겪었는가. 겪은 일보다 어떤 때는 이미지가 더 생생하게 삶의 시간을 흔들 때가 있다. 여름을 채우는 빛, 그 빛에 대한 이미지가 특정한 어떤 사건보다 더 생생하게 피부 속에 남아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한여름밤의 빛.

여름밤에 평상에 누워서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밤하늘이 지구에 사는 한 인간에게 보내주는 빛은 참으로 경이롭다. 한없이 맑은 밤하늘, 수박냄새가 묻어나오는 바람을 느끼며 하늘에 박혀있는 별들과 달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간.

저 가벼움이 생애를 채울 수 있다면. 삶의 무거운 모든 것들을 저 빛처럼 가볍게 안아볼 수 있다면. 그 가벼움의 '그네같은 허공' 속에서 발가락을 간들거리며 아주 오래 앉아있을 수 있는 빛같은 자리가 생애에 충분하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새벽까지 흔들며 노래 불러주는' 그 무엇과 함께 깨어나서 하루의 노역을 맞이할 수 있다면. 일상이 곤욕스럽기는 하다. 하지만 일상이 있으니 빛도 있지 않은가.

허수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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