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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삶의 마지막 메시지 남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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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삶의 마지막 메시지 남기기

입력
2009.09.15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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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평소 존경하던 분과 식사를 함께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우리의 주제는 자연스레 유명 인사들의 죽음으로 넘어갔다.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ㆍ김대중 전 대통령, 연예인 장진영, 마이클 잭슨, 에드워드 케네디 미 상원의원 등이 줄지어 우리 곁을 떠났다. 이 시대의 기쁨과 슬픔을 우리와 함께 했고, 알게 모르게 깊이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다.

무심히 돌아보면 지난 5월 존엄사 판결도 있고 해서 올해의 화두는 온통 죽음인 듯하다. 우리 모두 애통함과 안타까움에 젖었다. 김 추기경은 화해와 사랑을 유지(遺志)로 남겼다. 김 전 대통령은 화합과 통합, 그리고'행동하는 양심'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들의 뜻을 받들겠다고 다짐했다. 장진영씨는 또 어떤가? 국화보다 아름다웠던 미소를 기억하는 이들의 마음을 저미게 한다. 더욱이 그녀가 죽기 전에 베풀었던 선행에 모두가 감동한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루 게릭 병으로 죽어간 미국인 모리 교수는 <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는 책을 통해 삶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했다. <마지막 강의> 로 알려진 미국인 랜디 포시는 췌장암으로 죽어가면서도 삶의 나침반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들이 있다. 그들은 위대한 인물이거나 친근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삶과 죽음에 관해 감동 깊은 메시지를 남기고 떠났다.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삶의 마지막 순간에 경험한 것들을 진솔하게 들려주었다.

최근 우리 곁을 떠난 유명인들이 이들보다 더 소중한 존재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래서 이 분들이 '삶의 마지막 메시지'를 생전에 남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해석되는 유지보다, 가감 없는 진솔한 육성을 직접 듣고 싶은 것이다. 그들의 죽음이 충격과 절망, 상실감이 아니라, 삶의 교훈과 지혜와 희망을 주기를 우리 모두 바라고 있지 않는가.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인파들이 끊이지 않는 모습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인간은 누구든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두려움보다 용기를 갖고 당당하게 맞고 싶어 한다. 바로 그 때문에 유명인사들은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생전에 국민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 줄 것인지 궁금해한다. 그들이 고난과 좌절에 굴하지 않고 삶을 지탱한 힘과 지혜는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죽음은 결코 두려운 것만은 아니다'는 가르침을 평범한 우리도 실천할 수 있도록, 그들이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생생한 목소리나 글을 통해 그들의 메시지를 듣거나 본 기억이 별로 없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탓일까, 아니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 탓일까?

우리는 한 인간의 삶이 그 자체로서 아름답고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막연하게나마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는 것처럼, 우리는 어느새 의미 있는 죽음을 찾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눈여겨보게 된다.

나는 '품위 있는 죽음'을 강의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거기에 쏠리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기 환자이건 건강한 직장인이건, 모두에게 비슷한 관심 사항이다. 언젠가 우리가 죽음에 직면했을 때, 지도자나 원로 또는 유명인사들이 전하는 삶과 죽음에 대한 지혜와 용기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들의 죽음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역경을 이겨낼 희망을 찾는 것이 아닐까.

윤영호 국립암센터 책임연구원 · 가정의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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