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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원군 이종범씨 부부의 '예술 축산'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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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원군 이종범씨 부부의 '예술 축산' 아시나요?

입력
2009.09.15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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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에서 괴산 청천 방면으로 19번 국도를 달리다 청원군 미원면 쌍이리에 다다르면 꽃밭에 뒤덮인 축사가 나타난다. 이 마을 이종범(49)씨가 한우 220여 마리를 키우고 있는 '다알리아 농장'이다. 꽃 이름이 붙은 농장답게 이곳은 형형색색 꽃 천지다.

'뚜루루루 귓전에 맴도는 낮은 휘파람 소리~'

지난 11일 오전 은은한 백일홍 향기를 맡으며 축사에 들어서자 귀에 익은 가요가 들려왔다. 소들에게 건초를 먹이는 주인 이씨도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소들은 먼저 먹으려 다투지도 않고 천천히 건초를 받아먹었다.

'꿈의 대화'로 곡이 바뀌자 이씨가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인데 이 녀석들도 좋아하는 것 같다"며 "음악이 나오면 녀석들의 표정이 아주 편안해진다"고 했다.

"얘들아! 오늘 하루도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야지." 소 잔등을 어루만지며 건네는 말이 마치 사람에게 하는 것 같다. 부인 이은순(43)씨는 "어쩌다 음악이 끊기면 소들이 기둥에 설치된 스피커 쪽으로 몰려들며 허둥대기 때문에 음악 트는 일에 신경을 쓰고 있다"며 살짝 웃었다.

마침 길을 지나던 승용차 한 대가 농장 앞에 멈춰서더니 50대 남녀가 차에서 내렸다. 부부로 보이는 이들은 꽃 속에 파묻혀 있는 축사가 신기해 보였는지 기념 사진을 찍고 갔다.

이씨가 축사를 화원처럼 꾸미기 시작한 것은 2007년부터. 가축의 몸집만 키우는 기존 축산에 대해 회의가 일던 시기였다. 고향에서 부모님을 모시며 고추 농사를 짓던 그는 1998년 결혼 이후 축산에 뛰어들었다.

육우 40마리로 출발한 그는 부지런히 사료를 먹였다. "무조건 살만 찌우면 최고라 생각했습니다. 오로지'사료에 뭘 첨가해야 소가 더 잘 먹을까' 골몰했었죠."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소가 크게 자라지도, 고기 품질이 나아지지도 않았다.

그는 체계적인 축산 공부를 위해 2007년 초 청원 벤처농업대학에 진학하면서 '변해야 산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축산물 개방 시대에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길은 오로지 품질 향상뿐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특히 한 강의에서 "소비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축산물을 만드는 것이 축산인의 사명"이란 말을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소비자를 감동시킬 방안을 밤낮으로 궁리하던 그는 아내에게서 실마리를 얻었다. 당시 둘째 아이를 낳은 후 우울증에 빠져있던 아내는 스스로 치료를 위해 꽃을 가까이 하면서 시간만 나면 축사 주변에 갖가지 꽃을 심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꽃이 활짝 피자 소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소들은 전보다 여물도 잘 먹고, 잔병치레도 거의 하지 않았다. "소 키우는 여자가 무슨 꽃타령이냐"고 심통을 부렸던 이씨는 "소들도 꽃을 좋아하는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부부는 2,500㎡에 달하는 축사(3동)주변에 본격적으로 꽃을 심었다. 노랑 빨강 하양 등 색깔이 화려하고 꽃잎이 오래가는 다알리아를 중심으로, 해바라기, 들국화, 백합, 백일홍 등도 심었다. 현재 축사 주변에 심은 꽃은 다알리아만 25종에 각종 야생화 150종 등 200여종에 달한다. 꽃이 지는 겨울에는 꽃을 담은 그림을 축사 곳곳에 걸어놓았다.

이씨는 꽃 심기와 더불어 소들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것도 시도했다. 벤처농업대학에서 알게 된 '음악농법'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축사 2동 가운데 한 동에는 음악을 틀어 주고, 다른 동에는 틀지 않는 방식으로 3개월 동안 양 축사 소들의 체중 변화를 비교 분석해봤다.

결과는 놀라웠다. 음악을 듣고 자란 쪽 한우의 체중이 하루 평균 수백g에서 최대 1㎏까지 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곧 모든 축사에 스피커를 달았다.

음악은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12시간 동안 튼다. 처음에는 교향곡 같은 클래식 음악과 새, 계곡 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주로 들려줬다. 요즘은 '7080'가요를 많이 튼다. 음악을 도맡은 부인 이씨는 "소들이 부드러우면서도 경쾌한 7080 노래를 가장 좋아하는 것 같다"며 "소들이 듣는 가요음반만 30개가 넘는다"고 귀띔했다.

이렇게 2년여 동안 키운 한우를 첫 출하한 지난 5월, 이씨는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최우수 육질 등급 출현율이 다른 농가보다 월등히 높았기 때문이다. 그의 최상급 육질 출현율은 45%(44마리 가운데 20마리가 1++급)를 기록, 전국 평균 14%에 비해 3배나 높았다.

이씨는 지난 7월 미원초등학교 전교생 160명을 초청해 농장에서 미술 사생대회를 열었다. 주제는 '소와 꽃'. 그는 "아이들에게 우리 한우가 얼마나 깨끗한 환경에서 자라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동물도 사람과 똑같이 깨끗한 곳에서 스트레스 받지 않고 살면 더 잘 자란다"며 "친환경 축산물은 무엇을 먹이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환경에서 자라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축사 한 가운데에 집을 짓고 사는 그는 " '고기에서 향기가 날 것 같은'가장 아름다운 한우를 키워 브랜드로 개발하는 게 꿈"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청원=한덕동 기자 dd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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