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스 라이트 지음·하정임 옮김/다른 발행·584쪽·2만9,000원
9·11테러가 미국에 준 충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은 미증유의 이 사건으로 테러 노이로제에 걸렸고 급기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일으켜 지금껏 그 질곡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책 <문명전쟁> 은 9∙11테러를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 해 8월 미 연방수사국(FBI) 미니애폴리스 지방 수사국이 비행기 자살테러를 기도하려 한다는 이슬람 과격주의자를 체포하고 본부에 신상조회를 요청했다가 묵살당했으며, 미 중앙정보국(CIA)은 9∙11 테러범 2명이 범행 19개월 전 입국한 사실을 알고도 FBI에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문명전쟁>
이 책은 알 카에다의 역사, 테러리스트의 삶, 테러를 막기 위한 미국 요원들의 활동 등을 두루 담은 흥미있는 내용으로 퓰리처상등 권위 있는 상을 수상했다. 소설가이자 논픽션, 시나리오 작가인 저자 로렌스 라이트는 9∙11테러가 터지자마자 이 책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그것은 그가 영화 '비상계엄'의 시나리오 작업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1998년 개봉한 '비상계엄'은 뉴욕 한복판에서 발생한 테러를 소재로 한 영화여서, 그는 9∙11이 일어나자마자 책을 써야 한다는 책임감을 같은 것을 느꼈다는 것.
저자는 알 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 2인자인 아이만 알 자와히리, 빈 라덴의 후원자였다가 나중에 등을 돌린 알 투르키 사우디아라비아 왕자, 미국 FBI의 대테러 담당 책임자 존 오닐 등 4명을 축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제목이 말해주듯 저자는 9∙11을 빈 라덴 추종자의 단순 테러가 아니라 문명 간의 전쟁으로 파악하면서, 빈 라덴과 알 자와히리에게 철학적 기반을 제공한 이집트의 반정부 학자 사이드 쿠트브를 등장시킨다. 그는 1940년대 미국에 머물면서 세속과 향락을 경험한 뒤 순수 이슬람을 지키기 위해 서구와 성전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 인물. 쿠트브는 1996년 이집트 정부에 의해 처형됐으며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은 그를 순교자로 추앙했고 그의 주장을 더욱 더 추종했다.
쿠트브의 추종자 중 한 명인 빈 라덴은 서구 문명이 이슬람을 파괴할 것으로 우려하고 서구의 맹주 미국을 적으로 삼아 대항하기로 한다. 저자는 빈 라덴이 9∙11로 미국을 유인, 아프가니스탄에서 서서히 죽도록 하려 했다고 주장한다.
알 자와히리는 알 카에다의 2인자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이 책은 그를 매우 중요한 인물로 그린다. 저자에 따르면 9∙11테러를 앞두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살인과 자살을 둘러싼 논란에 빠져 있을 때, 알 자와히리는 배교도나 이단은 살해해도 되며 신의 영광, 이슬람의 이익을 위해서는 목숨을 버려도 된다고 그 문제를 이론적으로 정리했다.
저자가 5년 동안 11개 국에서 600명 이상을 인터뷰한 끝에 완성했다고 밝혔듯 방대한 자료와 증언, 풍부한 인물 이야기가 돋보인다.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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