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외신들은 미 백악관의 새 안주인 미셸 오바마가 인근 밴크로프트 초등학교 학생들과 백악관 뜰의 잔디 일부를 걷어내고 허브 등 채소를 심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일제히 보도한 바 있다.
식구들이 먹고 남는 건 푸드뱅크나 인근 학교에 나눠주겠다는 의미라고 외신은 전했다. 정원에는 잔디를 심어야 하고 7㎝ 이상 자라면 줄 맞춰 깎아줘야 한다는, 미국인의 자연에 대한 콤플렉스이거나 허영일지 모르는 강박적 상식을 뒤엎는 퍼포먼스였다.
하지만 그 퍼포먼스의 배후에 <행복한 밥상> 의 저자로 우리에게 친숙한 마이클 폴란(54)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리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행복한>
폴란의 초기 작품인 이 책은 고전적 생태주의, 좀 더 솔직히 표현하면 '생태 교조주의'에 대한 도발서다. 야생의 자연에 대한 관념적·낭만적 미화의 관성에서 벗어나자는 역설적 계몽서이고, 생태 교범을 따르다 좌절한 뒤 자신의 한계를 나무라야만 할 것 같은 묘한 죄의식에 시달렸을 수많은 이들을 위한 위안의 수필이다.
저자는 생태주의자의 전범으로 꼽히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성도(聖徒)'였던 자신이 시골로 이사한 뒤 7년간 '5 에이커짜리(약 2만㎡) 땅뙈기'를 가꾸며 야생과 싸운 과정을 그리고 있다.
'상상 속의 정원'을 가슴에 품고 그것을 현실 속에 가꾸려 했던 그 긴 싸움의 끝에 그는 150년 전에 살았던 그의 멘토(소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무렴 즐겁지, 헨리. 그리고 굶어 죽는 거야."
그는 도시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자신도 자연을 안이하게 생각했다는 고백으로 본격적인 '투쟁'의 도정을 회고한다. "정원 문제에 대해 나는 꽤나 진보적이었다.
살충제를 뿌려 정원 해충들을 초토화시키거나 우드척(땅에 굴을 파고 사는 설치류의 한 종)에게 엽총을 쏘거나 채소밭 주위에 전기철조망을 설치하는 따위의 조치는 지나칠 뿐 아니라 무책임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나는 자연의 생태는 취약한 것이라고 여겼다.
땅을 가꾸면서 인간의 우세한 힘을 이용해 다른 것들의 저항을 무력화시키는 짓은 부주의하고 정당치 못한 것으로, 이것은 이른바 환경제국주의적인 사고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58쪽)
폴란은 자신의 이런 '감상적인 마음 자세'를 여지없이 떨쳐버리게 했던 체험들을 계절별로 낱낱이 소개한다. 4월이 되면 첫 번째 도전이 시작되는데, 퇴비 뿌리고 땅 고르고 가지런히 이랑 만들어 심어둔 각종 채소 모종들을 '자신을 위해 차려놓은 밥상인 양' 우드척이 와서 잘라먹는다.
잡초는 또 어떤가. "꽃밭이 초원 쪽으로 뻗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초원이 집쪽으로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고 쳐들어온다. 내가 개입하지 않으면, 여름이 지나기 전에 숲과 정원의 경계는 무너져버리고 말 것이다." 그리고 땅 속의 여린 뿌리줄기를 잘라먹고 이파리들을 갉아먹는 온갖 종류의 곤충 무리들….
소로는 생태주의자의 바이블로 통하는 저서 <월든> 에서 자신의 콩밭 가꾸기 체험을 소개한 바 있다. "이 콩들이 우드척을 위해 자란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 풍성한 잡초가 새들에게는 보다 풍부한 먹잇감을 제공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닌가?" 폴란은 소로의 그 품 넓은 생태주의를 회의한다. 월든>
독한 살충제까지 뿌려대며 자연을 장악하는 '과잉 경작'이 자연을 객체로 전락시키는 것이듯, '과소 경작' 역시 그에겐 자연과의 조화와 공존이라는 가치에 어긋나는 선택이다. 폴란은 인간의 적절한 개입을 통해 자연의 거센 공격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압승도 완패도 아는 균형의 자연이 곧 '세컨 네이처'다. 자연의 자유로운 기품을 빼앗는 짓이라 여겨 담장조차 두르려고 하지 않던 폴란은 온갖 우드척 퇴치작전의 실패를 경험한 끝에 분노하며 전기 철조망을 두르게 된다. 정원살이를 통해 체득한 생태주의의 현실적 길을 아주 구체적이고 진솔하게 전한다.
마이클 폴란 지음ㆍ이순우 옮김
황소자리 발행·383쪽·1만5,000원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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