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파 라히리 지음·박상미 옮김·마음산책 발행·416쪽·1만3,000원
2000년 첫 소설집 <축복받은 집> 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일약 미국 문단의 기대주로 떠오른 여성 작가 줌파 라히리(42). 런던에서 태어나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자란 인도계 이민 2세인 그의 문학적 자산은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리려는 이민자로서의 정체성 탐구이다. 축복받은>
그의 두번째 소설집 <그저 좋은 사람> 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 고통스럽게 자기 자신을 응시하는 작가의 표정을 엿볼 수 있는 8편의 작품이 한데 묶여있다. 표면적 차원에서 그것은 이민 1세대와 이민 2세대간의 갈등·불화라는 형태로, 좀더 깊은 차원에서는 떨쳐내고 싶어도 너무 가깝게 밀착돼 있는 가족의 의미를 묻는 질문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저>
자전적 요소가 투영된 표제작은 작가가 맞서온 이런저런 질문 모두를 품고 있다. 여주인공 수드하는 인도의 전통을 고수하려는 부모 세대와 미국적 가치관을 내면화하고 있는 남동생 라훌 사이의 불화라는 짐을 홀로 떠맡고 있다.
미국 대학생들은 "너무 자유가 많고 너무 놀기를 좋아한다는 게 문제"라는 부모 세대의 가치관에 동의하지는 못하지만, 그녀는 부모의 기대대로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이민 2세대의 엘리트 코스를 착실하게 밟는다.
반면 철저히 미국 아이로 키우겠다며 어려서부터 자신이 애지중지 돌본 동생 라훌은 전통의 금압을 거부하며, 알코올 중독자로 전락한다. 대학 중퇴를 만류하는 자신에게 오히려 "누나가 뭘 고칠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내 인생은 이대로 너무 좋다는 거 혹시 생각이나 해봤어? 언제나 모든 걸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고 일갈한다.
작가가 궁극적으로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이런 갈등은 은폐한 채 '성공한 이민자'의 삶을 보여주려는 이민가족의 노력은 허위의식의 반영에 불과하다는 것. 삐걱거리다가 부딪히고 압력을 견디지 못해 폭발하는 가족구성원들의 미묘한 감정 흐름의 묘사는 라히리 소설의 백미다.
세밀화를 그리는 화가처럼 뛰어난 관찰력이 그 밑바탕이 된다. "자기 가족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마치 책 끝에 달린 주석처럼 자신 안에 있는 무엇이었지만 보이지 않게 감추어져 있었다", "남자들은 그녀의 마음이 딴 데 있다는 걸 아는 듯했다. '영업중'이라는 전등에 불을 끄고 그냥 지나가는 택시처럼, 멈추어서 시간을 내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같은 비유도 볼 만하다.
2008년 출간된 책의 원제는 '길들지 않은 땅(Unaccustomed Earth)'. 인간도 감자처럼 '길들지 않은 땅'에 뿌리를 내려야 번성한다는 너대니얼 호손의 소설 <주홍글씨> 의 구절에서 따왔다. 말하자면 이 책은 그 언명에 대한 라이히의 당돌한 응전인 셈이다. 주홍글씨>
이왕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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