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고향은 제주도 푸른 바다랍니다. 이곳 사람들은 오토미라고도 부르는데, 옆에서 보면 앞 머리는 수직에 가깝게 떨어졌고 몸은 온통 붉습니다. 2002년9월 성산 일출봉 근처에서 부화한 저는 그 동안 새우와 조개류 등을 먹고, 길이는 40㎝, 몸무게는 1㎏으로 자라났습니다. 그런데 지난 2월 낚시에 걸려서 물 밖으로 나오는 신세가 됐죠. 너무 쉽게 보인 갯지렁이를 덥석 문 게 실수였습니다. 어쨌든 제 몸값이 비싸다고 하는데 사실 저는 모래 바닥에 구멍을 파고 그 속에서 사는 지라 낚시로만 건질 수가 있습니다. 한꺼번에 그물로 쉽게 잡는 물고기들과는 출발부터 다릅니다.
뭍으로 와 제주시의 동문시장에서 경매에 부쳐진 저는 이철준 해성수산 대표의 손에 낙찰됐습니다. 이 때 제 몸 값은 3,000원이었습니다. 가공 공장에서 사각형 모양의 비늘이 벗겨진 뒤 몸이 양쪽으로 해체된 전 곧장 영하 50도로 동결, 진공포장됐습니다. 사실 이 대표는 제주에서 옥돔을 냉동 보관하는 방법으로 처음 인터넷 상품화한 분이죠.
1980년 후반 동문시장에 생선 좌판을 낸 이 대표는 서울 손님들의 주문을 소포로 부치러 다니다 우체국 쇼핑을 알게 됐다고 하네요. 당시 우체국에서는 1986년 우루과이라운드 시장개방 압력으로 어려움에 처한 농어민들을 돕기 위해 우체국 쇼핑(www.epost.kr)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이 대표의 인터넷 제주 수산물 판매는 이제 연간 매출 20억원에 육박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대표가 저희를 우체국 쇼핑을 통해서만 팔고 있다는 겁니다. 다른 유통 경로로 팔 경우 수수료를 많이 줘야 하기 때문이죠. 유통 업체별 판매 수수료는 영업비밀이나 업계에선 통상 TV홈쇼핑이 매출의 15∼40%, 인터넷 쇼핑몰은 10∼30%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가공 및 냉동 보관비 등으로 원가가 5,000원이 된 저를 만약 TV홈쇼핑을 통해 판다면 1만원은 받아야 하는 것이죠. 그래야 4,000원을 홈쇼핑에 주고 이익을 남길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반면 우체국 쇼핑의 수수료는 4%도 안 됩니다. 이 대표가 다른 곳에서는 1만원 안팎인 저를 우체국 쇼핑을 통해서 6,000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팔 수 있는 이유죠.
이러한 유통 구조의 가장 큰 피해는 결국 소비자입니다. TV홈쇼핑 단가를 맞출 수 없는 일부 업체는 품질이 안 좋은 옥돔을 씁니다. 밥상에 올라온 저희를 맛 본 소비자는 비싸기만 하다고 저희를 욕 합니다. 소비자가 아닌 유통업자들의 배만 불리고 있으니 정말 억울한 건 저희들입니다.
최근 이 대표는 손길이 더 바빠졌는데도 얼굴은 싱글벙글입니다.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과 전국경제인연합회 같은 경제단체들이 추석 선물로 우리 농축수산물을 이용키로 함에 따라 우체국쇼핑에 벌써부터 기업들 주문이 밀려들고 있기 때문이죠. 어제는 전화 통화를 엿들었는데 지난 설 연휴 땐 불경기로 선물을 건너 뛴 기업도 이번 추석엔 주문을 한다고 하네요. 우체국 쇼핑은 100% 국산 농축수산물만 취급하고 있어 우리 농축수산물을 찾는 이들에겐 제격이죠. 분기마다 성분 검사를 통해 철저하게 검증하는 덕에 믿고 찾는 S사의 P회장, K제약 C회장 등 단골 회장님도 적지 않습니다.
이번 추석에 혹시 저를 만나게 되시면 한가지 팁을 드릴게요. 제발 등이 아닌 살 부분부터 구워 주세요. 그래야 제 몸이 바스러지지 않고 제주의 풍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답니다. 그리고 신토불이처럼 신해불이(身海不二)도 기억해 주세요.
제주=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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