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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번호엔 가치관·꿈·사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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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번호엔 가치관·꿈·사연이…

입력
2009.09.13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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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가 12일 은퇴하는 정민철(37)의 23번을 영구결번 시키기로 했다. 프로야구에서 영구결번은 정민철이 7번째다. 92년 대전고를 졸업하고 빙그레에 입단한 정민철은 2004년까지는 55번을 달았으나 2005년부터 23번으로 바꿨다.

정민철 이전에 영구결번의 영예를 누린 선수는 모두 6명. 1호는 1986년 불의의 사고로 숨진 OB 김영신(54번), 2호는 96년 해태 선동열(18번), 3호는 99년 LG 김용수(41번), 4호는 2002년 OB 박철순(21번), 5호는 2004년 삼성 이만수(22번), 6호는 2005년 한화 장종훈(35번)이다.

선수들에게 유니폼 번호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가치관, 목표, 꿈, 사연 등의 축소판이다. 메이저리그의 간판포수였던 게리 카터는 구단과 계약할 때 8번을 계약조건으로 관철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카터의 생일은 8일이다.

프로야구 최고 몸값(10억원)의 주인공인 KIA 한기주도 2005년 5월 계약 당시 10번을 요구했다. 한기주는 카터처럼 문서화하지는 않았지만, 선배 한규식의 양보로 프로에서도 10번을 달 수 있었다.

광주일고-고려대 시절 줄곧 11번만 달았던 선동열은 해태 입단 후 18번으로 '말'을 갈아탔다. 11번의 주인은 '해태 간판' 김성한이었다. 선동열은 선배 장진범에게 18번을 물려받았다.

트레이드 때문에 목숨처럼 여기던 번호와 이별하게 된 경우도 있다. '29번의 대명사' 김시진은 88년 11월 삼성에서 롯데로 옮겼다. 김시진은 롯데에서도 29번을 원했지만 그 번호의 주인은 윤학길이었다.

'안타 제조기' 장효조도 같은 경우다. 삼성에서는 10번만 고집했던 장효조지만 롯데 이적 후 20번으로 바꿔야 했다. 10번의 주인은 '자갈치' 김민호였다. 롯데에서 김시진은 28번, 장효조는 20번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정민태는 "20승을 하겠다"며 20번을 달았고, 99년 꿈을 이뤘다. 하지만 지난해 히어로즈에서 KIA로 이적하면서 20번 대신 64번을 받았다. 정민태는 "20번이 까마득한 후배 것이라 그냥 64번을 달았다"고 말했다. KIA의 20번은 윤석민이다.

최경호 기자 squeez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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