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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사상 첫 5개기구 복싱 챔피언 김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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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사상 첫 5개기구 복싱 챔피언 김주희

입력
2009.09.13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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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은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이다.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정글에 비교되는 사각의 링에서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 링에 한번 오르기 위해서는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혹독한 훈련과 철저한 자기 절제가 필요하다.

지난 5일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여자국제복싱협회(WIBA), 여자국제복싱연맹(WIBF), 세계복싱연합(GBU) 라이트플라이급 통합 타이틀 매치에서 태국의 파프라탄 룩사이콩을 4회 TKO로 꺾고 사상 최초로 5개 기구 챔피언 벨트를 차지한 한국 여자 복싱의 간판 스타 김주희(23ㆍ거인 체육관)는 이런 점에서 '타고난 챔피언'이라고 할 만 하다.

열 여덟의 나이에 처음 챔피언에 등극한 그는 5년간 무서울 만큼의 근성과 자기 관리로 굳건히 세계 정상을 지키고 있다.

김주희는 무서운 투혼을 발휘하는 링 위에서와 달리 링 밖에서는 밝고 명랑하다. 2PM의 노래를 좋아하고 쇼핑도 즐기는 그는 하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 많은 또래 여성의 모습이었지만 어렵사리 오른 정상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뒤로 미뤘다.

김주희는 이번 통합 타이틀전 준비가 복싱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고 말한다. 그는"링에 오를 준비를 마쳤는데 경기가 연기되는 일이 반복됐어요. 한번도 복싱을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타이틀전을 준비하면서 정말 더 이상 못하겠다는 생각이 수도 없이 많이 들었다"며 지난 5일의 타이틀전을 준비했던 1년 3개월간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복서가 경기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년에 2~3차례는 링에 올라야 한다. '연습 벌레'로 정평이 난 김주희는 타이틀전이 목전에서 무산되며 팽팽한 긴장감이 풀리는 데서 오는 정신적인 부담을 극복하기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주희의 훈련량은 상상을 초월한다. 타이틀전을 앞두고는 로드워크 등 체력 훈련과 기술 훈련을 포함, 하루 10시간의 강훈련을 소화해 냈다. 그는 2006년 11월 골수염으로 오른발 엄지 발가락 1cm 가량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통증을 참고 훈련을 강행해 부상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김주희는 스스로에게 무서울 정도로 철저하다. "훈련이 힘들 때면 평소 연습량의 2~3배를 소화합니다. 샌드백을 12라운드씩 쳤는데 어느 날 나도 모르게 게을러진 자신을 발견하고 35라운드 동안 샌드백을 두들긴 적이 있죠"라며 '자기 관리 노하우'를 공개했다. 훈련 강화는 나태해진 스스로에게 치는 채찍인 셈이다.

김주희는 3대 기구 통합 타이틀전을 앞두고 체육관에서 실신하기도 했다. 하루에 2시간씩 만 잠을 자며 훈련과 아마추어 지도자 2급 자격증 획득 준비를 병행하는 강행군 탓이었다. 타이틀전이 거푸 연기된 끝에 지도자 자격증 연수 기간이 타이틀전 준비와 겹쳤고 김주희가 글러브를 낀 후 11년째 지도하고 있는 정문호 관장의 만류에도 불구, 김주희는 새벽 3시에 일어나 아침 운동을 한 후 한국체대에서 진행된 지도자 자격증 연수 후 체육관으로 돌아와 다시 훈련을 소화하는 '살인 일정'을 버텨내다가 결국 체육관에서 쓰러진 것.

한국 여자 복싱의 간판 스타가 된 후 '얼짱 복서''작은 거인' 등 수많은 닉네임이 붙었지만 김주희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호칭은 '효녀 복서'인 것 같다. 치매와 뇌출혈 등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아버지 김산옥씨(57)의 병수발을 하면서도 살림과 운동 모두에 소홀함이 없다. 타이틀전을 앞두고 훈련량이 늘어 아버지를 입원시킬 때도 체육관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병원을 선택했다. 한번이라도 더 찾아 뵙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쇼핑할 때면 비싼 물건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지만 '이 돈을 치매 치료제 개발에 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돌아설 때가 많아요"라는 김주희의 말에는 애틋한 부정이 잘 드러난다.

김주희는 아직 어린 나이인 만큼 미래에 대해 뚜렷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다만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사람들에게'김주희'라는 이름 석자가 쉽게 잊혀지지 않도록 혼신을 다할 뿐이라고 말한다. 일단 차기 목표는 세계복싱평의회(WBC) 타이틀 획득이다.

김주희는"세계 타이틀을 전부 따내면 '우주 챔피언'이라는 호칭이 붙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죠"라는 농 섞인 말로 복싱에 대한 그의 무한한 열정을 표현했다.

초인적인 자기 절제력과 발가락 수술로 정상 보행도 어려운 상태에서 링에 오르는 투혼을 고려할 때 김주희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무릎 꿇기 전에 사각의 링에서 그를 꺾을 상대는 당분간 나타나기 어려울 듯 하다.

김정민 기자 goav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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